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9일(현지 시각) 반(反)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에 가담한 전 사우디 정부 인사 2명을 터키로 인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터키 이스탄불 법원은 앞서 5일 카슈끄지 살해 모의 혐의로 아흐마드 알 아시리 전 사우디 정보기관 2인자와 사우드 알 카흐타니 전 사우디 왕실고문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알 아시리와 알 카흐타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최측근으로, 카슈끄지를 살해하기 위한 ‘암살조’ 파견과 작전 관리에 직접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델 알 주바이르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은 이날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 참석해 기자회견을 갖고 관련 질문에 "우리는 우리의 시민들을 인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알 주바이르 장관은 "터키 당국은 우리가 믿고 있는 만큼 준비돼 있지 않다"며 "우리는 터키의 친구들에게 우리가 법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증거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적절한 방식으로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반(反)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2018년 10월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가고 있는 모습(왼쪽)과 카슈끄지로 분장한 사우디 정보요원이 영사관을 빠져나오는 모습(오른쪽).

터키 정부는 카슈끄지 피살이 자국 영토 안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암살조’ 15명과 사우디 총영사관 직원 3명 등 용의자들이 터키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며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카슈끄지 살해 지시가 사우디 ‘최상층부’에서 왔다고 단언하며 시신의 행방과 사건 배후를 밝히라고 압박하고 있다.

카슈끄지는 올해 10월 2일 결혼 관련 서류를 받으러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살해됐다. 사우디 정부는 당초 그의 사망 자체를 부인하다가 터키 정부가 언론을 통해 여러 정황과 증거를 유출하며 압박하자 "우발적인 사고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면서 결국 계획된 살인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는 실세인 빈 살만 왕세자가 이번 사건과 관련됐다는 의혹은 계속해서 부인하고 있다. 사우디 검찰은 지난달 카슈끄지 피살 사건의 ‘몸통’으로 알 아시리를 지목하고 총 21명을 체포해 억류 중이라고 밝혔다. 이 중 11명은 카슈끄지 살인 혐의로 기소하고, 살인과 시신 훼손에 직접 가담한 5명에게는 사형을 구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