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또다시 '축구 신바람'이 불고 있다.

6일 밤 박항서(59)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필리핀을 누르고 2018 AFF(아세안축구연맹) 스즈키컵 결승 진출을 확정하자 베트남 전역은 열광에 휩싸였다. 베트남은 이날 하노이에서 열린 준결승 2차전에서 필리핀을 2대1로 꺾어 1·2차전 합계 4대2로 10년 만에 결승에 올랐다. 박항서호(號)의 시원한 승전보가 전해진 거리 곳곳에선 대표팀 상징색인 붉은색 폭죽이 터졌다. 오토바이 한 대에 두세 명씩 올라탄 젊은이들은 금성홍기(베트남 국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내달렸다.

2018 스즈키컵 준결승 2차전이 열린 베트남 하노이 미딩 스타디움 관중석에는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 외에도 태극기가 쉽게 눈에 띄었다. 베트남 팬들은 박항서 감독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태극기를 흔들었다. 베트남이 2년마다 열리는 스즈키컵에서 결승에 오른 것은 10년 만이다.

"생큐, 코레아." "생큐, 박항세오(박항서의 베트남식 발음)."

하노이에서 경기를 지켜본 기자도 수많은 현지 팬에게 감사 인사를 받았다. 광란의 축제는 자정이 넘도록 끝나지 않았다.

◇"진짜 간절한 건 바로 스즈키컵"

베트남에서 이런 축구 풍경은 이제 일상이 된 느낌이다. 지난 1월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AFC(아시아축구연맹) U-23(23세 이하) 챔피언십 준우승을 거둔 이후 아시안게임 4강에 이어 스즈키컵 결승 진출까지, 베트남 축구는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거듭된 승리에 무던해질 만도 한데, 베트남의 환호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앞선 23세 이하 챔피언십이나 아시안게임보다 지금이 훨씬 더 뜨겁다.

그 이유는 스즈키컵의 역사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2년마다 열리는 스즈키컵은 '동남아시아의 축구 월드컵'으로 통한다.

하지만 베트남은 2008년 우승이 유일하다. 이 대회 최다 우승팀은 태국(5회), 그다음이 싱가포르(4회)이다. 베트남 매체 '징'은 "국민은 베트남 축구가 동남아에서 태국에 이어 '일인지하 만인지상(한 사람의 아래에 있고 만인의 위에 있다)'이라고 생각하지만, 스즈키컵만 보면 성적이 싱가포르·말레이시아보다 못하다"며 "베트남 사람에게 스즈키컵 우승은 아시안게임 4강보다 더 간절할 것"이라고 전했다. 준결승 2차전을 관전한 사람 중엔 베트남 권력 서열 2위 응우옌 쑤언푹 총리도 있었다.

◇박항서호 사상 첫 무패 우승 도전

2002년 한국의 히딩크처럼 박 감독은 이미 베트남의 국민 영웅이 됐다. 스즈키컵 동안 베트남 TV와 각종 웹사이트 광고에는 박 감독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제 이름 모를 시골에서조차 그의 사진을 쉽게 볼 수 있다.

킥오프를 앞두고 인사를 나누는 박항서(오른쪽) 베트남 감독과 스벤 예란 에릭손 필리핀 감독. 아래는 열띤 응원을 펼치는 베트남 팬들의 모습이다. 한 팬은 등에 박항서 감독의 얼굴을 그렸다.

최근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최고인 FI FA(국제축구연맹) 랭킹 100위까지 끌어올린 박 감독은 이번 스즈키컵에서 베트남 사상 첫 무패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준결승에서 맞붙은 세계적인 명장 스벤 예란 에릭손 필리핀 대표팀 감독은 경기 후 "박 감독이 베트남을 우승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추켜세웠다.

베트남 국민의 우승에 대한 기대감도 이제 하늘까지 치솟았다. 베트남이 11일(원정)과 15일(홈) 맞붙을 결승 상대는 말레이시아다. 베트남은 조별리그에서 말레이시아를 2대0으로 누른 바 있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은 긴장의 끈을 풀지 않았다. 그는 준결승 직후 "베트남이 2014년 스즈키컵 준결승에서 말레이시아에 진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할 것"이라며 "말레이시아에는 참가국 중 최고 기술을 가진 공격수들이 포진돼 있어 조직력을 더 강화해야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