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원숙·수필가

마창대교가 올려다보이는 바닷가 마을이었다. 예전에는 해안선이 움푹한 조용하고 외진 곳이었지만 지금은 스타벅스가 들어설 정도로 동네가 바뀌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시댁의 조카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면서 점심을 하기로 하였다.

장어구이를 먹어보자고 했는데 미리 예약을 안 했다고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유명한 음식점인가 싶어 은근히 기대를 하면서 식당을 찾아갔다. 언덕바지에 있는 음식점에 들어갔더니 자리가 없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빈자리가 많은데 왜 기다려야 하느냐고 물으니 "자리만 있으면 뭐 합니까? 일하는 사람이 없는데" 하며 손님을 반기는 낯이 아니다. 급한 것도 아니라며 기다렸더니 주인인 듯한 남자가 말없이 아주 알맞게 타오르는 숯불을 테이블에 얹어주고 갓 잡은 장어를 채반에 올려 가져왔다.

우리가 석쇠에 장어를 얹으려니까 여자가 급히 다가오더니 "살을 우로!" 한다. 숯불에 장어를 구울 때는 먼저 살 부분이 위로 향하게 놓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세상일도 그 여자의 명령어처럼 단순 명료하고 확실하며 자신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음식 맛과 더불어 훈훈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12월인데도 내려오는 길가 조그만 수로에 메리골드 맨드라미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골목길 수수한 국화꽃들에도 자꾸 눈길이 갔다. 무심한 듯 자란 꽃들이 오랜 세월 피고 지며 생명력을 이어왔기에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아름다웠다. 자신이 예쁜지 모르는 사람처럼. 양지바른 언덕엔 예부터 포도밭이 많았는데 언제부터인가 키위밭도 생겨나 찻길가엔 어른 주먹만 한 키위를 팔고 있다. 세상사가 바뀌고 부침이 있더라도 키위 파는 아줌마의 당당함과 장어구이집 여자의 활기는 누구도 앗아 가지 못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