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환 대법관 후보자는 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송구하다"며 사과했다. 위장 전입과 다운계약서 작성 전력(前歷) 때문이었다. 그는 세 차례 위장 전입했다. 지방 근무를 하면서 주소지를 서울 압구정동 등으로 해놨다는 것이다. 아파트 청약을 위해 주소지를 위장했다고 한다. 앞서 김기영 헌법재판관도 세 차례 위장 전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매년 100명 이상이 위장 전입 등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이들을 처벌한 사람들이 판사다. 그런데 최고위 판사들이 뒤로는 자기들이 처벌했던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이들이 위장 전입으로 처벌받았다면 지금의 자리에 오를 가능성은 낮았을 것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현 정권 들어 임명된 김명수 대법원장과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그리고 신임 대법관·헌법재판관 13명 중 9명(김 후보자 포함)이 위장 전입을 하거나 다운계약서를 썼다. 부동산을 매매할 때 계약서에 실거래가보다 낮은 가격을 기입하는 다운계약서 작성은 지금은 불법이지만 2006년 이전엔 처벌 조항이 없었다. 그러나 과거에도 다운계약서는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한 목적으로 주로 쓰였다. 법의 허점을 파고든 탈법이다. 법을 어기고 탈법 행위를 한 판사들이 대법원과 헌재의 수장(首長) 그리고 최고 법관 자리에 앉아 남의 불법을 심판하고 있는 셈이다.

김상환 대법관 후보자가 4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의를 들으면서 머리를 만지고 있다. 김 후보자는 위장 전입과 다운계약서 작성 전력에 대해 의원들의 추궁이 이어지자“송구하다”며 사과했다.

위장 전입은 명백한 주민등록법 위반이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선고받을 수 있다.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위장 전입이 포함된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2007~2016년 10년 동안 총 1172명이 징역형·벌금형을 받아 전과자가 됐다. 그런데 김 후보자를 포함해 현 정권에서 임명된 5명의 대법관·헌법재판관이 위장 전입을 했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대법관)도 세 차례 위장 전입을 했다. 이은애 헌법재판관은 여덟 번, 이종석 재판관은 다섯 번 위장 전입을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유남석 헌재소장은 집을 살 때 다운계약서를 썼다. 김선수·노정희·이동원 대법관과 이석태 헌법재판관도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 이들은 "(2006년 전) 당시의 거래 관행이었지만 송구하다"고 했다.

이런 사실이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날 때마다 여론은 들끓었다. 4일에도 김 후보자의 위장 전입 기사에는 '범죄자가 범죄자를 심판할 자격이 있나' '남이 한 건 불법이고 님(김 후보자) 한 건 관행? 내로남불의 극치' 같은 댓글이 수백개씩 달렸다. 그런데도 비슷한 인사가 계속되고 있다.

대법관 후보자는 대법원장이 대통령에게 임명을 제청한다. 1차 검증은 대법원에서 주로 한다. 그러나 임명권자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도 대법관 후보자 검증을 해온 것이 관례였다. 헌법재판관 후보자도 최종 임명권자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청와대가 후보자에 대한 기본적인 검증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가 검증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특히 청와대가 지난해 밝힌 '7대 공직 배제' 원칙에 따르면 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은 재판관이 될 수 없었던 사람이다. 이 원칙은 2005년 7월 이후 자녀 학교 배정 관련 등으로 위장 전입을 두 차례 이상 했을 때는 공직에서 배제하게 돼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임명을 강행했다. 두 사람은 위장 전입 공소시효(5년)가 지나 처벌할 수도 없다.

헌법재판관 출신의 변호사는 "결국 우리 쪽 사람인지를 최고 (인선)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했다. '검증'보다는 '코드'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유남석 헌재소장은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노정희 대법관도 우리법연구회 회원이었다. 김기영 헌법재판관과 김상환 후보자는 우리법연구회의 후신(後身)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다. 김선수 대법관과 이석태 헌법재판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민변 회원이었다가 지난해 당선 후 탈퇴했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불법을 저지른 판사가 대법관·헌법재판관이 돼 남을 단죄하는 것을 어느 국민이 납득하겠느냐"며 "사법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