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KT 서울 아현지사 화재로 우리 군의 전시(戰時) 지휘소인 남태령 벙커에서 용산 한미연합사령부를 연결하는 합동 지휘체계 회선 등이 끊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완전 복구에 이틀이나 걸렸다고 한다. 전시에 적 공격으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찌 됐을지 아찔한 일이다.

군은 자체적으로 국방 통신망을 구축할 수 없는 지역은 KT의 유선망을 임차해서 쓰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화재로 KT 유선망을 통해 연결된 합동지휘통제체계(KJCCS) 5개, 군사정보통합시스템(MIMS) 4개 등 42개 회선이 먹통이 됐다. 합동지휘통제체계는 평시는 물론 전시에 한국군 합참과 연합사가 각종 전쟁 정보를 주고받는 지휘 통제·통신(C4I) 체계다. 군사정보통합시스템을 통해서는 청와대·국정원·안보지원사(옛 기무사)가 실시간으로 첩보·정보를 공유한다. 이런 한국군 전쟁 지휘부의 핵심 통신 네트워크가 KT 지사 한 곳 화재로 끊긴 것이다.

현대전에서 네트워크 중심의 작전 수행능력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군사력의 핵심이다. 각급 부대가 아군과 적군의 위치·병력·무기 현황 등에 관한 정보를 실시간 공유해야만 적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화재에 대해 국방부는 "무선·위성 등 다른 통신망을 구축해놓아 작전 대비 태세에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무선·위성 통신은 광케이블을 기반으로 한 유선망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나 용량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육·해·공군은 물론 미군과 비밀문서와 지도 등 시각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다중 통신 체계를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군이 KT 유선망을 기본망으로 구축해놓았을 이유가 없다.

전략 정보를 주고받는 군 지휘 통신망은 유사시 단절 위험을 피하기 위해 다중 경로로 구축한다. 그런데 군은 KT는 물론 SKT, LG유플러스 등 다른 통신사 유선망까지 모두 구축하는 방안을 지금에서야 추진하는 단계라고 한다.

군은 국가안보에 구멍이 생기는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보완 대책이 마련돼 있어 아무 상관이 없다고 변명한다. 그러면서도 군사 기밀을 이유로 어떻게 문제가 없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남북 군사합의로 휴전선 인근 정찰 비행이 무력화됐을 때도 후방에서 첨단 장비로 감시하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엄청난 예산을 들여 정찰 비행 장비를 도입한 이유는 대체 뭔가. 아마도 정권이 바뀌면 군 간부들의 말은 또 180도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