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 인상으로 내년 소요 예산이 올해보다 2조원 늘어나는데도 정부가 시행령에 규정된 '적정성 평가'를 하지 않고 5년 뒤인 2023년으로 미뤘다. 재정 등에 문제가 없는지 종합 점검하도록 한 절차를 건너뛰었다. 기초연금 인상에 따라 지급액은 내년 11조원, 2030년 39조원, 2050년 123조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국민연금도 올해 보험료 조정 등 제도 개선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이미 법정 시한인 10월을 넘겼다. 이런 적이 없었다. 복지부 장관은 애초 11월에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하더니 "12월까지"로 또 미뤘다. 건강보험도 9월에 내놨어야 할 '종합계획'이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문재인 케어'로 들어갈 돈이 막대하게 늘었는데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30조원이 더 든다"는 것만 발표하고, 그 이후 전망은 입을 다물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인데 건보 혜택을 대폭 늘렸으니 눈덩이처럼 부담이 불어날 수밖에 없다. 그 액수가 엄청나니 밝히지 말고 다음 정권으로 떠넘기자는 것이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500억원 이상 대형 사업에 의무화된 예비 타당성(예타) 조사도 건너뛰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내년에 근로장려금 등 복지 확대에 드는 세금 3조7000억원에 대해 예타를 생략했다. 총 7건인데 한 건도 하지 않았다. 국가재정법 원칙도 무시한다. 지난 5월 편성한 일자리 추경(3조8000억원)에서도 10개 사업의 예타를 생략했다. 수천억, 수조원대인 대북 지원 예산도 예타 면제를 추진하고 있다. 예비 타당성 조사를 하면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니까 아예 건너뛰겠다는 것이다.

이 정부의 특징 중 하나가 막대한 세금이 들어갈 일을 벌이면서 장기(長期) 추계에 대해서는 "계산 안 해봤다"고 하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 중 추계치만 밝히고 그 이후에 벌어질 감당 못할 사태는 숨긴다. 다음 총선, 대선 때 포퓰리즘으로 표를 얻는 게 국가 재정보다 더 중요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