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전력 공급을 담당하는 공기업인 EDF(전력공사)가 지난달 9일 깜짝 발표를 했다.

2022년까지 프랑스·영국·이탈리아·벨기에 등 4개국에 전기차용 충전소 7만5000개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4개국에는 외딴 시골까지 EDF의 충전소가 촘촘하게 들어서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가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 자동차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전기차 생산도 중요하지만, 더 결정적인 것은 충전소 등 인프라 구축이다. 이 문제를 프랑스에선 공기업인 EDF가 앞장서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프랑스·영국·이탈리아·벨기에 4개국에서는 2020년이면 전기차가 100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EDF가 설치하기로 한 충전소만으로 그중 60만대의 충전 수요를 해결할 수 있다. EDF가 유럽 '전기차 전환'의 핵심 플레이어가 되겠다는 것이다. 장-베르나르 레비 EDF 사장은 "유럽에서 가장 앞서가는 전기차 충전업체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EDF뿐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SNCF(철도공사), RATP(파리교통공사) 등 공기업들이 '모빌리티(이동성)' 산업을 중심으로 미래 혁신 사업의 선봉대로 나섰다.

SNCF(철도공사)는 지난 12일 전례 없던 사업 구상을 발표했다. 유럽 최대의 카풀(car pool) 서비스 업체인 블라블라카와 손잡고 열차·버스·카풀을 연계한 교통 서비스를 내년에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로 치면 코레일과 카카오 카풀이 손잡고 버스까지 곁들인 것이다.

SNCF는 "스마트폰 앱에서 몇 번의 손가락 터치를 하면 3가지 교통수단을 조합해 고객이 원하는 곳까지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로 갈 수 있게 만들겠다"고 했다. 창립 81년을 맞은 직원 15만명의 거대 공기업 SNCF가 12년 된 신생 기업과 손잡고 미지의 사업 영역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3개 이동수단 연계 서비스를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SNCF는 자회사인 버스업체 '위버스'를 블라블라카에 넘기고, 이후 1억유로(약 1272억원)를 투자해 블라블라카의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동맹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파리의 전철·버스 운행을 맡고 있는 RATP(파리교통공사)는 무인 셔틀버스 도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여러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이 개발에 참여한 무인버스를 들여와 파리 시내와 근교 곳곳에서 시범 운행에 들어갔다. RATP의 무인 셔틀버스는 12인승이며, 한 대당 하루 최고 6000명을 실어나를 수 있다. 오는 2020년부터 단거리 노선을 중심으로 상업 운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프랑스 교통 공기업들의 이런 변신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강력한 공기업 개혁이 성과를 보이면서 가능해졌다. 공공 부문 노조는 지난 4~6월만 해도 마크롱 대통령의 국철(國鐵) 개혁에 맞서 파업과 시위를 벌였다. 마크롱이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며 개혁의 성과가 안착하자, 이제는 공기업들이 미래 산업의 선봉대로 나서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공기업들의 변신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로 했다. 엘리자베트 보른 교통부 장관은 26일 "자전거, 카풀, 버스, 열차를 연계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제거하겠다"며 "여러 교통수단을 조합하는 상품이 보다 대중화되도록 관련 법률도 정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