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불안, 유언비어에 현혹됐던 국민이 작년 대정전과 심각한 대기오염을 겪으면서 원전의 필요성을 깨닫게 됐습니다."

지난 24일 치러진 대만 국민투표에서 차이잉원(蔡英文) 정권의 탈(脫)원전 정책 폐기를 이끌어 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예쭝광(葉宗洸·54·사진) 대만 칭화대 원자과학원 교수는 27일 본지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원전을 배제한 차이잉원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대만의 에너지 수급을 포함한 국가 전체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말했다.

탈원전 정책으로 전력 수급 불안에 시달려오던 대만은 24일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찬성 589만5560표(59.5%), 반대 401만4215표(40.5%)로 탈원전 정책 폐기를 선택했다. 예 교수는 "철저한 반(反)원전주의인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대만에 맞지 않는다"며 "천연자원이 부족한 대만에서 원전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학적 근거로 유언비어 끝장내

예 교수를 비롯한 대만 과학자들은 2012년부터 '원전 유언비어 종결자(Nuclear Myth Busters)'란 단체를 결성하고, 페이스북에 같은 이름의 코너를 만들어 활동해 왔다. 페이스북에 원전 관련 루머나 질문이 올라오면 핵물리학자 등 수많은 전문가가 즉각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고, 궁금증을 풀어주는 댓글을 달았다.

환태평양지진대에 위치한 대만은 1999년 중부 난터우(南投)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2415명이 숨지는 등 지진 피해가 심각하다. 세계 2위의 높은 인구밀도 탓에 원전 주변에 인구도 많이 몰려 있다. 특히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대만 국민의 원전에 대한 공포는 더욱 커졌다. 급기야 차이잉원 민진당 주석은 2016년 1월 "대만을 2025년까지 원전 없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탈원전 정책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총통에 당선됐다.

차이잉원 당선 이후, 예 교수 등은 원전 바로 알리기 활동을 더 치열하게 벌였다. 예 교수는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원전에 대한 강연이나 토론 등을 요청하면 수많은 전문가가 자발적으로 나섰다"며 "반원전주의자들과 TV 토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신문사에도 줄기차게 기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젊은 세대들이 과학적·합리적 태도로 원전을 바라볼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예 교수는 "작년 8월 15일 828만 가구의 전기가 끊기는 대정전이 발생하면서 국민은 우리가 말해왔던 것들이 모두 사실이란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며 "이후 사람들은 점점 원전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고 했다.

◇원전으로 대기오염 극복… 환경보호

예 교수 등은 '이핵양록(以核養綠·Go Green with nuclear)'을 모토로 내세웠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 에너지로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이들은 지난 2월 탈원전 정책 폐기를 묻는 국민투표를 발의했다. 온실가스 배출로 북극의 빙하가 녹아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북극곰 마스크를 쓰고, 역(驛)과 공원 등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을 누비며 원전의 필요성을 알리고, 국민투표에서 탈원전 정책 폐기에 동의할 것을 독려했다.

"원자력 에너지로 환경 지키자" - 지난 4일 대만 타이베이 동물원에서 북극곰 마스크를 쓴 원전 지지자들이‘이핵양록’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탈원전 정책 폐기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이핵양록(以核養綠·Go Green with nuclear)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 에너지로 환경을 보호하자는 의미이다.

그는 "대만 국민도 잦은 지진 발생 등 원전엔 안전 이슈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과거 기록을 봐도 대만 원전의 안전성은 매우 높은 수준이란 점을 대만 국민도 이제 납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 몇 년 동안 대기오염 문제가 너무나 심각해져서 사람들이 대기오염 위험을 감수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라며 "대신 사람들은 깨끗한 원자력 에너지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