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유성기업 본관에서 민노총 조합원들에게 폭행당하다 풀려난 상무 김모씨가 피를 흘리며 119 구급 대원들에게 치료를 받고 있다.

"이렇게까지 야만적이고, 잔혹하게 무차별적으로 구타를 하는 게 노조입니까.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지난 22일 충남 아산시 둔포면 유성기업 본관 2층 대표이사 집무실에서 벌어진 민노총 금속노조 유성지회 조합원들의 집단 감금·폭행 현장에 함께 있던 최철규(64) 대표이사는 "말할 수 없이 참혹한 상황이었다"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최 대표는 27일 본지 통화에서 "갑자기 사무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조합원들이 양쪽에서 내 팔을 붙들고 벽으로 끌고 갔다"면서 "노조원들이 제가 나서면 폭행이 더 커질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김 상무와 저를 분리시켜서 폭행을 저지할 수 없었다. 참담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조합원들이 김○○ 상무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됐는데도 '이판사판이다. 끝장을 보겠다'며 계속 때렸다"고 했다. 조합원들의 집단 감금·폭행은 약 1시간 후 현장 조합원이 외부에 있던 노조 지회장과 통화를 한 후에야 끝났다. 최 대표는 "그들은 제 회사 점퍼를 걸레 삼아 바닥에 흘린 김 상무의 피를 닦고, 어지럽혔던 사무실을 정리하고 철수했다"며 "자리를 뜨던 한 조합원이 '이게 마지막이 아니다. 김○○을 내보내지 않고는 정상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이런 협박을 받으면서 어떻게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 22일 오후 3시 40분쯤 대표이사 집무실로 들이닥친 조합원은 10여명. 이들은 김모(49) 노무 담당 상무를 향해 "너를 죽이고 감방을 가겠다"고 하면서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시작했다고 한다. 폭행은 김 상무에게 집중됐다. 김 상무는 조합원 10여명에게 둘러싸여 일방적으로 당했다. 조합원들은 '아프냐 XX놈' 'XX놈 죽어라'고 소리치며 김 상무의 얼굴과 배를 가격했다. 김 상무 가족을 상대로 협박도 했다. 한 조합원은 "(주소를 얘기하며) 너희 집이 어딘지를 알고 있다. 너희 식구들을 가만 놔둘 줄 아느냐"고 했다.

최 대표는 "김 상무가 그간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징계에 앞장서서 노조가 앙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일 노조 집회에서도 조합원들은 "김 상무 이놈을 잡아서 족칠 것이다. 집이 ○○인데 쳐들어갈 계획도 있다"는 등 위협이 계속돼 왔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충남 아산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회사 임원을 집단 폭행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최철규 대표이사의 자필 진술서. 한 노조원이 폭행을 당한 김모 상무에게‘너네 집 식구들 가만 놔둘 줄 아느냐’고 협박하고, 사무실 바닥에 물을 뿌리면서 바닥에 흘린 피를 닦은 사실 등을 설명하고 있다.

폭행 현장을 그대로 목격한 최 대표는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사건 이튿날인 지난 23일 아산경찰서와 천안고용노동지청에 항의 및 행정 지도 요청서 공문을 보냈다. 폭행 사건 당시 경찰의 대응에 대한 항의와 불법 노동 행위에 대해 정부 기관의 도움을 청하는 내용이다.

최 대표는 "경찰에 신고를 여섯 번이나 했는데 출동하고서도 노조 조합원들에게 가로막혀 진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최 대표는 조합원 2명에게 붙잡혀 벽 쪽에 붙어 서 있었는데 경찰이 진입하지 않고 건물 밖에 모여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최 대표는 "유리창 너머로는 경찰이 보이고, 앞에서는 김 상무가 맞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정말 가슴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아산경찰서에 보낸 항의 공문에서 그는 "'사람이 맞아 죽는다. 빨리 와달라'고 신고하며 절박하게 애원했지만 출동한 경찰은 사람을 구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경찰은 집단 구타를 자행한 10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않았고 식당에 모여 회의하고 있는 조합원들을 지켜보기만 했다"면서 "사람이 감금을 당한 채 집단 구타를 당하고 있는데 현장에서 구경만 하는 것이 경찰의 임무인가"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처음 현장에 도착한 경찰 4명이 40여명의 조합원을 뚫고 들어갈 수 없었던 상황"이라며 "여성 조합원까지 맨 앞줄에 가세하는 바람에 섣불리 손을 쓸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경찰이 무적도 아니고 무자비하게 공권력을 행사하기 어려웠다"면서 "노조를 잘못 건드렸다가 오히려 강력히 법 집행을 한 경찰에게 화살이 돌아올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의 소극적 대응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충남경찰청은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 경찰청 감사관실과 충남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실 등 감찰 부서는 유성기업을 관할하는 아산경찰서에 투입돼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폭행에 가담한 조합원 중 5명의 신원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5명에 대해서는 공동상해 혐의를 적용해 조만간 수사를 벌일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피해자의 진술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피해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있어 진술 조사를 하는 데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성기업 관계자는 "김 상무가 이번 폭력 사건으로 부상이 심하고 정신적 충격까지 받아 접촉이 불가능하다"면서 "더구나 조합원들이 병원까지 찾아올 것이 두려워 어느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본지는 26~27일 이틀간 민노총 금속노조 유성지회장과 현장에 있던 조합원들에게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