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초등학교 교과서 삽화를 크게 수정했다. 어머니가 가족에게 밥을 건네는 장면은 온 가족이 어울려 식사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윷놀이에서 구경만 하던 여성의 모습도 함께 놀이를 하는 것으로 다시 그렸다. 불평등한 성 역할을 바로잡고자 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뜻밖의 논란이 벌어졌다. 남자들은 "여자도 군대 가라"고 했고, 여자들은 '생리'와 '출산'도 나눠 할거냐며 맞섰다. 격해진 논란은 인신공격과 욕설이 난무하는 전쟁터로 변했다.

▶남녀 갈등은 지역 갈등과 빈부 갈등, 세대 갈등에 이은 한국의 주요 사회문제다. 남녀 갈등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본격화됐다. 여성 고용률은 2016년 사상 처음 50%를 넘었다. 여성 관리자 비율도 10년 전의 갑절인 20% 위로 올라섰다. 사회 곳곳에서 남성과 경쟁하는 여성은 가사 노동과 육아가 여전히 여성 몫인 것을 지적하고 나섰다. 경력 단절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합리적 문제 제기조차 '남혐'과 '여혐'의 대결로 번지기 일쑤였다.

▶엊그제 서울 이수역 부근 술집에서 20대 남성 여럿이 20대 여성 두 명을 폭행했다는 사건이 청와대 청원으로 알려졌다. 쌍방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데도 남자를 처벌해 달라는 청원에 30만명 넘게 참여했다. 그러자 '먼저 시비를 건 여자들을 처벌해 달라'는 남자들의 청원도 올라왔다. 무슨 사건만 벌어지면 남혐과 여혐으로 갈라져 패싸움을 벌이는 형국이다.

▶남자를 '한남충', 여자를 '된장녀'라 부르던 남녀 갈등은 2016년 '강남역 묻지 마 살인사건'에서 폭발했다. 범인은 "나를 욕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하철에서 여자들이 나를 지각하게 하려고 앞을 가로막는다"고 하던 피해 망상증 환자였다. 당시 국회의원이던 대통령은 강남역 메모지 중 '다음 세상에서는 남자로 태어나요'라는 메모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젊은 여성 표를 얻었겠지만 이런 식으로는 남녀 갈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남자는 꼭 필요한 1달러짜리 물건을 2달러에 사고, 여자는 전혀 필요 없는 2달러짜리 물건을 1달러에 산다"는 농담이 있다. 이런 말도 젠더 인식에 문제가 있다. 남성과 여성 어느 쪽도 우월하지 않음을 전제로 여성이 오랫동안 사회적 약자였음을 인정하는 게 성 평등의 첫 걸음이다. 그날 술집에서 젊은 남녀들이 내뱉었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한 상스러운 욕설들이다. 혐오도 이런 혐오가 없다. 이 험악한 전염병의 병리(病理)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