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자매사건, 수사 74일만에 일단락
'소극적 대응' 사학 폐쇄성이 사태 더 키워
'쌍둥이 퇴학'도 기준없이 '감정' 따라

숙명여고에서 쌍둥이 자매가 문·이과 전교 1등을 차지했다는 소식은 지난 7월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후 교내방송을 통해 알려졌다. 쌍둥이가 1등상을 받는 장면이 학교방송을 통해 학생들에게 알려진 것이다.

7월 24일 교육청에 민원이 접수됐다. ‘시험 부정’을 의심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학교측은 묵묵부답이었다. 학부형들의 촛불 시위가 시작됐다. 그래도 학교는 꿈쩍도 안했다. 그로부터 74일 만에 경찰 수사 결과가 발표되자 학교는 ‘쌍둥이 자매의 성적을 0점 처리하고 퇴학 절차를 밟겠다’고 발표했다. 1심 재판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교육 전문가들은 "철학없는 학교 행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문제를 회피한 학교측의 초기 대응이 문제를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원인으로 ① 성과주의를 우선으로 한 교육철학의 부재(不在) ②학교 보호에만 급급한 의사결정 구조 ③폐쇄적이고 불투명한 사학법인의 온정주의 ④제3자 감시체계 작동 불가 등을 꼽는다.

지난 8월 31일 숙명여고 정문 앞에서 학부모들이 교무부장 현씨의 시험지 유출을 규탄하는 집회를 가지며, 교문에 항의 표시의 흰 리본을 달고 있다.

◇ 숙명여고, 초기 대응이 없었다
쌍둥이의 '드라마틱'한 성적 향상은 소문으로 전교생에게 공유됐고, 대치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성적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7월 말 학교 홈페이지에 쌍둥이 아버지이자 이 학교 전 교무부장인 현씨의 해명글이 올라왔다. "학교 평가문제 인쇄·보안관리 매뉴얼에 따라 문제가 없다"는 취지였다. 현씨는 "CCTV가 작동하는 인쇄실에 접근하지 않았고, 교무실에서 약 1분 정도 (정답과 문제 난도가 표기된) 문서를 보거나 형식적 오류를 잡아내는 작업을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숙명여고 학업성적관리규정 13조(평가기준 및 평가문제 출제)는 ‘교사 부모는 자녀가 속한 학년의 정기고사 문항 출제·검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논란은 오히려 커졌다. 그러자 학교는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해명글을 삭제했다.

교육청 민원이 접수된 지 20일만인 8월 13일 숙명여고는 "교육청 조사 및 감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냈다."학생들에게 상처가 되니 교육청의 조사, 감사 결과가 나올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부탁의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학부모들은 매일 시위를 이어가는데 학교가 자체적으로 밝혀낸 사항은 거의 없었다. 결국 감사와 수사가 이어지며 경찰은 지난 12일 쌍둥이 자매와 아버지인 현씨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자 학교가 한 일은 "현씨의 파면을 징계위원회에 건의하고, 쌍둥이를 퇴학조치하겠다"는 것이었다. 학교 측 조사는 제 때, 제대로 했는지, 아니었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지 등의 이야기는 없었다. 현재 당사자들은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상황.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은 학생을 퇴학처분하는 이유와 원칙’에 대해서도 똑 부러지는 논리가 없었다.

다시 논란이 일자, 학교 측은 13일 오후 학부모들에게 문자를 보내 "법원에서 (전직 교무부장에 대해) 영장을 발부한 것이 범죄행위가 소명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법적 자문을 바탕으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쌍둥이들의 변호인은 "확정 판결이 나기도 전에 내린 결정은 무죄추정 원칙에 위배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자기네끼리, 서로 믿는 분위기가 학교 망쳤다
학교 측의 안일한 대응이 사학의 폐쇄성, 온정주의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이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했다가 무혐의로 판단한 전임 교장의 경우, 서울시교육청 감사에서 "우리 스스로만 깨끗하고 공정하게 하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교사 자녀가 (숙명여고에) 재학했을 때 학업성적관리와 결재에서 배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숙명여고 재학생과 학부모 중 일부는 "숙명여고 '성적 부정'이 이게 전부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 상황. 학교가 '상호 감시' 체제를 갖추지 못했기에 나오는 '의혹'이다.

다른 교사의 ‘분석’은 이렇다. "우리학교는 시험 종이 치면 학생들이 쥐고 있던 펜을 던져요. 그렇지 않으면 ‘부정의혹’이라고 학부모 민원이 들어오고, 그만큼 관리가 철저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요. 명성에 먹칠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다른 선생님도 그럴 것이라고 ‘믿었으니’ 의혹에 대해서도 아무도 의심을 하거나 문제제기 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우리나라의 경우 외부기관이 견제하려해도 사립학교 법 앞에선 무력하다. 숙명여고 학교법인인 '명신여학원'은 이사 10인(이사장 포함) 전원이 숙명여고 졸업생이다. 현행법상 사립학교 교원에 대한 징계권과 인사권을 사학법인이 갖고 있어 '선·후배' 사이로 똘똘 뭉친 공간에서 부정을 보더라도 외부에 '비리 폭로'가 어려워 지는 것이다.

문제유출 의혹의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그제서야 지난달 이사회에서 정관상 교원 직위 해제와 해임 사유에 ‘형사사건으로 기소’를 추가했다. 사건 핵심 관련자인 전 교무부장을 징계하기 위한 정관 개정이었다. 이전까지는 개인의 부정을 막을 제도가 없었다.

송도선 한국교육철학회장은 ‘사립학교의 폐쇄성’을 제도적으로 바꿔야한다고 지적했다. 송 회장은 "부정부패와 비리가 있어도 제한된 소수만이 알고 있게 되는 게 더 큰 문제"라며 "그들은 서로 눈감아주면서 ‘침묵하는 동조자’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립학교처럼 시스템상 자체 정화기능이 생기도록 제도를 마련해야한다"고 했다.

가령 지난 2011년 미국 뉴욕에서는 대규모 성적 조작 스캔들이 터졌을 당시, 주 정부와 교육위원회는 "중앙에서 시험을 관리하게 되면 성적 조작과 위조 등을 손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주관식 및 논술문제 답안지를 스캔해 다른 학교 교사가 채점하는 방식, 시험 감독을 서로 다른 학교의 교사들로 교차배치하는 방안 등이 언급됐다. ‘제 3자’를 투입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교육 철학을 다시 짚어봐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황금중 연세대 교수(교육학 박사)는 "학교가 추구하는 교육 철학에 따라 비리를 눈감고 가지 않는 학교도 있다"라며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대한 불공정성이 제기되면 적극적이고 자체적인 조사 등 처리해나가는 모습도 학생들에게는 정의와 공정함을 가르치는 과정인데, 학교는 이 부분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 "여론에 떠밀려 쌍둥이 퇴학조치" 우려도
사학 폐쇄성은 쌍둥이들의 퇴학 조치 결정에서도 드러난다. 여러 단계를 밟는 외국 사례와 달리 일방적으로 '통보'를 한 것이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이라는 점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미국은 교장이 지역 교육위원회에 문제의 학생에 대해 정학이나 퇴학을 상신하고, 청문회를 거쳐 결정한다. 독일은 징계 처분이 교육적 선도방안의 일환이어서 비공개가 원칙이다. 또 학생징계는 구두 경고부터 퇴학까지 10단계(담임교사 견책 → 학교장 견책 → 학급 이동 → 교과수업 격리 → 단기 정학 → 장기 정학 → 타교 전학 → 퇴학 경고 → 퇴학)를 거친다. 영국은 불가피하게 퇴학처분을 내릴 경우, 대안 교육시스템을 제시한다.

황 교수는 "경찰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증거로 인한 심증적인 부분으로 ‘엄벌해야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성난 여론이 무서워 성급하게 퇴학 조치를 내렸다고 볼만한 부분도 있다"라며 "학교 자체 조사 등 (퇴학 처분에 대한) 근거가 없다면, 법원의 사실판단이 나오기 전 내린 결정은 나중에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