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연내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설치될 경우 정부 비판 세력을 탄압하는 '권력 남용 기구'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13일 국회에서 제기됐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윤한홍 의원에게 제출한 '공수처 유사 외국 기구 운영 현황' 자료에서 '외국의 고위 공직자 범죄 전담 기구들이 우리 공수처 법안에 비해 한정된 권한을 행사하는데도 정부 비판 세력 탄압이나 (자체) 부패 등의 사례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공수처 설치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청와대가 적극 추진하고 있다. 공수처에 청와대·장차관·국회의원·법관·검사 등 고위 공직자 비리에 대한 수사 전반과 기소·공소유지권 등을 모두 부여하는 내용이다. 야당은 "현재 검찰을 능가하는 수퍼 수사 기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입법조사처는 조사 자료에서 현재 고위 공직자 부패 범죄에 대해서 공수처와 유사한 기구를 운영하고 있는 주요 국가는 싱가포르(탐오조사국), 홍콩(염정공서), 말레이시아(반부패위원회), 영국(중대부정수사청) 등이라고 밝혔다. 또 이 4국 중 우리 공수처처럼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기구를 둔 나라는 영국뿐이라고 했다.

1952년 창설된 싱가포르 탐오조사국은 총리 직속 기관으로 수사권과 압수수색, 체포 권한이 있지만 기소권은 없다. 수사 과정 전반에서도 검사의 지휘를 받게 돼 있다. 그런데 탐오조사국은 정부에 비판적인 싱가포르대의 한 교수를 제자에게 성 상납을 받은 혐의로 조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입법조사처는 '이 교수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받았고, '정치 탄압'이라는 비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탐오조사국은 또 차기 총리 출마가 유력시되는 집권 여당 정치인들의 뇌물 스캔들에는 의도적인 '봐주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고 입법조사처는 전했다.

1974년 설치된 홍콩의 염정공서도 수사권을 행사하지만 기소권은 없다. 염정공서도 '정치 경찰'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입법조사처는 밝혔다. 염정공서의 전직 부국장은 홍콩의 국회 격인 행정회의에 출석, 염정공서가 전직 행정회의 의장 등 고위 인사의 집 전화를 도청하거나 정·재계 인사의 사생활 비밀을 수집한 사실이 있다고 폭로했다고 한다.

윤한홍 의원은 "우리나라가 도입하려는 공수처는 이 외국들의 기관보다 훨씬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권 반대 세력을 탄압할 수 있는 용도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 여당이 공수처를 서둘러 설치하려고만 할 게 아니라 야당 탄압과 직권남용 등 부작용을 면밀히 검토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공수처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싱가포르는 여당이 장기 집권하고 있고, 홍콩은 중국과의 관계 등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어 공수처와 관련해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며 "야당의 우려를 사개특위에서 충분히 경청해 논의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