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21개 구청서 측정기 임대
성동구는 '정밀' 측정기까지, 양천·용산은 '계획無'
강남구 1070명 대기, "지금 신청하면 내년 4월 가능"

"삐 삐 삐…"
지난 7일 오전 11시 30분쯤, 서울 노원구 상계동 불암산 기슭 목조주택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상계동 주민센터에서 가져온 라돈측정기(라돈아이)에서 나는 소리였다. 측정기에 표시된 실내 라돈 농도는 5.89피코큐리(pCi). 실내공기질 관리법에서 정한 권고기준(4 pCi/l)을 웃도는 라돈 농도였다.
"아이고메 이렇게나 공기가 나쁜 겨?" 집 주인 박숙희(86) 할머니의 눈이 커졌다.

지난 7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박숙희 할머니(왼쪽) 의 집에서 노원구청 관계자가 라돈 농도를 측정하고 있다.

◇침대, 베개 이어 온수매트까지…확산하는 라돈포비아
라돈은 무색, 무미, 무취한 자연방사능 물질이다. 환경부 생활환경정보센터에 따르면 짙은 농도의 라돈에 장기간 노출되면 폐암, 위암, 백혈병을 유발할 수 있다. 라돈은 특히 화강암 암반지대에서 농도가 높다. 한반도는 화강암 지질 비중이 높다.

"밤새 환기가 안 된 것 같으니 잠시 창문을 열고 다시 라돈을 측정해볼게요."
이번에는 측정값이 0.76pCi/l로 확 떨어졌다.

라돈이 고농도로 검출된 원인은 ‘환기’였다. 박 할머니는 "전날부터 14시간 동안 창문을 열지 않았다"고 했다. ‘출장 라돈측정’에 나선 노원구청 녹색환경과 박동순(47) 주무관이 할머니에게 당부했다. "할머니, 라돈이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없지만 정말 몸에 안 좋은 거예요. 창문만 잘 열어도 날아가서 괜찮아지니까, 춥다고 환기 안 하시면 안 돼요"

그래픽=이민경

'라돈포비아(공포증)'는 현재 진행 중이다. 라돈 침대, 라돈 생리대, 라돈 식탁에 이어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온수매트 등으로 라돈 논란은 확산하는 양상이다. 라돈 전문가인 조승연 연세대 환경공학부 교수는 "몸이 닿는 매트리스, 베개에서 발암물질 라돈이 검출된 것에 사람들이 공포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들은 20만원 가량인 라돈측정기를 주민들에게 대여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가 많은 서울 노원구는 지난 7월부터 공무원이 가가호호 찾아 라돈 농도를 측정하는 ‘출장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노원구청이 확보한 라돈측정기는 모두 50대. 현재까지 넉 달간 인터넷 신청인원만 2260여 명에 달한다. 한 달에 500명 꼴로 대기가 밀린 것이다.

◇라돈측정기 대여서비스 나선 지자체…강남구 대기인원만 1070명
구로·양천·용산·종로를 제외한 서울의 경우 25개구(區) 중 21개 구에서 라돈측정기를 대여해주고 있다. 관악구(66대), 서초구(52대), 노원구(50대)는 특히 다량의 라돈측정기를 확보했다. 3개구 관계자들은 "주민들의 요구가 빗발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영등포구(36대), 성동구(35대), 동작구(34대), 동대문구(30대), 송파구(30대) 순이다. 마포·서대문·금천·은평구는 5~6대 수준이다. 구로·종로구는 내년에 라돈측정기 구입 예산을 편성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라돈측정기 대여 수요가 계속 많은 것인지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했고, 양천구 측도 "라돈이 검출된 제품을 처리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라는 입장이다.

지난 7월 충남 당진항 야적장에 대진침대 라돈 매트리스 1만6000여장이 쌓여 있다.

보유대수와 무관하게 모든 구에서 대여 경쟁이 치열하다. 라돈측정기 10대를 확보한 강남구는 현재 1070명이 대기하고 있다. 11월 13일 신청하면 2019년 4월에야 라돈측정기를 쓸 수 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입 소문이 나면서 대여 신청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면서 "내년에는 60대를 추가로 구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개 한번 대여하면 1박2일 사용한다. 서초구청은 한번 빌리면 2박3일로 대여 기일이 길다. "서초구 아파트는 대개 큰 평수가 많습니다. 침대, 소파 등 들어가는 가구도 그만큼 많다 보니 주민들이 2박3일도 부족하다고 하십니다." 서초구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기자가 밀린 노원구청은 당일 반납이 원칙이다. 취약계층은 이 신청하면 공무원이 ‘출장 측정 서비스’에 나선다. 노원구청 소속 박정현 계장은 "젊은 사람들은 ‘어디서 라돈이 나왔다’는 보도가 나오면 알아서 라돈측정기를 빌려가지만, 취약계층은 그럴 여유가 없다"면서 "혼자 지내시는 어르신들은 라돈이 뭔지도 모르는 형편이라 직접 찾아간다"고 말했다.

"왜 우리 동네만 없느냐"는 항의에 라돈측정기를 부랴부랴 구입한 지자체도 있다. 라돈아이 26대를 확보한 성북구청의 경우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구청에 낸 세금으로 대체 뭐하느냐. 다른 구청은 라돈측정기 다 빌려준다’는 민원이 제기되어 지난달 29일 대여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성동은 정밀측정기까지, 양천·용산은 '난색'
성동구청은 대 당 200만원에 달하는 정밀측정기(FRD400)까지 갖췄다. 34대에 이르는 라돈측정기(라돈아이)에서 기준치가 넘는 가정에 한해, 정밀측정기로 재확인하는 방식이다. 주민과 라돈농도가 높은 제품을 만든 업체와의 분쟁이 잦기 때문에 정밀측정기를 마련했다는 것이 구청 측 설명이다.

라돈물질이 나오는 업체가 "간이측정기 수치는 믿을 수 없다"고 나올 경우, 정밀측정기 수치를 다시 제시하도록 마련한 것이다. 성동구청이 지난 7월 라돈측정기 대여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정밀측정기를 사용한 경우는 모두 10번이다. 성동구청 측은 "‘환불 분쟁’이 벌어졌을 때, 환경부 승인을 받은 정밀측정기로 구체적인 수치를 제공하면 주민들에게 요긴하다"고 말했다.

라돈측정기 대여서비스를 이용한 주민들은 "만족한다"는 반응이 많다. 노원구에 거주하는 이모(49)씨는 "측정은 한 번밖에 안 할 텐데 라돈측정기를 사기는 부담"이라면서 "집 안 라돈 농도가 2.4pCi/l로 나왔다. 기준치 아래라는 것을 확인하니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