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어떻게 만들어요?" "조선일보는 왜 그렇게 만들어요?"
사람들을 만나 조선일보 편집부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다들 이런 질문을 합니다. 기사와 사진을 어떻게 선별하며, 제목은 어떤 식으로 다는지, 대형 뉴스가 터지면 편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해하더군요.
10년 넘게 1면을 맡았던 편집자로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려 합니다. 신문이 만들어지는 편집국의 현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때 그 1면의 사연, 제목과 사진에 숨은 비밀, 지면의 파격 등 신문 제작 과정의 스토리를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어떻게 만드는지, 왜 그렇게 만드는지, 두 질문 모두에 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017년 7월 29일 0시15분, 편집국
"무스 유스이데 그에? (무슨 뉴스인데 그래?)"
국제부 야근자가 허겁지겁 달려왔을 때 나는 입안 가득 야식 김밥을 물고 있었다.
"방금 NHK에 1보가 떴는데요, 북한이 뭘 쐈답니다."
"이 밤에?"
밤 12시 15분이었다. 확인해보니 NHK에 뜬 자막은 한 줄이었다.

그뿐이었다. 추정? 정보? 확실한 건 없었다.
"빨리 야간국장(편집국의 야근 상황을 지휘하는 간부) 오라고 해."
11시 언저리까지 나온 뉴스들은 이미 서울 시내판 신문에 반영됐고 윤전기는 인쇄를 시작했다. 편집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다른 외신에 올라온 내용은 없고?"
방금 집에 도착한 편집부장이 전화를 받았다. "응. 그럼 좀 더 지켜보자고."
(회사에서 멀지 않은 동네에 부장의 집이 있다. 부동산에 관한 실패담을 많이 들었지만 이보다 나쁠 수가 있을까.)
"내가 회사로 갈게. 근데 북한이 밤에 미사일을 쏜 적이 있었나?" 스마트폰으로 관련 뉴스를 살펴본 부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제가 알기로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탄도미사일인가?"
"아직 모릅니다."
"어디로 쐈지?"
"그것도 모릅니다. 아직은"
"정치부 국방 담당에겐 연락했나?"
"아, 잠깐만요."
옆에서 야간국장이 국방부 담당기자와 통화하고 있었다. 들리는 내용으로는 아직 그쪽도 상황 파악이 안 된 모양이었다.
"지금 취재 중인 것 같습니다."
"음, 내가 편집국장에게 보고할 테니까 탄도미사일인 게 확인되면 바로 기계를 잡자고(윤전기를 정지시킨다는 의미)."

전화를 끊자마자 야간국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확인만 되면 기계 잡아야죠."
뉴스를 검색하려는데 모니터에 속보가 떴다. 연합뉴스가 올린 기사에도 역시 제목뿐. 기사는 없었다.

밤 12시 22분. NHK의 첫 보도 후 7분이 지난 시각이었다.
미사일? 그뿐이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순간에도 윤전기는 돌아가고 있다. 인쇄된 부수가 늘어난다는 건 새로 찍을 수 있는 부수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북한이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쐈다면 1면 톱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어떤 미사일을 쏜 건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미치겠네, 기계를 잡아야 하나
북한이 7월 4일(2017년)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장거리 탄도미사일(화성-14형)을 발사한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았다. 미국과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한 발의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쐈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우리 합참에서도 '쏜 건 맞다'고 확인해 주지 않았나. 그럼 일단 윤전기를 세워야 하지 않을까. 그래, 세우자. 아니, 아니지. 만일 그랬다가 '훈련용 단거리 미사일'로 밝혀지면? 쏘자마자 폭발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안 된다.

신문사에서 가동 중인 윤전기를 세운다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다. 인쇄가 멈춘 순간부터 윤전실, 수송 트럭, 지국, 배달원들까지 모두 대기 상태가 된다. 그냥 대기하는 게 아니다. 초조하게 기다린다. 늦은 배달은 독자들의 불만으로, 불만은 구독 중단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훈련용 미사일이나 발사 실패 뉴스로는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밤에, 일본 방송이 먼저 포착해 보도를 할 정도라면, 작은 걸 쐈을 리가 없을 텐데. 고민하는 사이에 시간은 흐르고 윤전기는 계속 돌아간다. 어쩌나, 나도 돌아버리겠다.

#윤전기를 세워라
'합참 속보'로 인한 고민은 다행히 3분을 넘기지 않았다. 12시 25분, 모니터에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속보 세 개가 거의 동시에 올라왔다.

북한이 24일 전에 쏜 ICBM급 미사일은 평안북도 구성에서 쐈다. (1)자강도는 평안북도 바로 옆이다. (2)거기서 일본 EEZ(배타적 경제수역)까지 갔다면, 이것 또한 지난 번에 쏜 것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라는 얘기다. (3)대통령이 이 새벽에 NSC를 긴급 소집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기계를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더 확인해봐야 하는 것 아냐?"
야간국장은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했고 편집국장은 1면 편집자의 의견을 물어왔다. '빨리 윤전기를 세우고 1면 톱기사를 바꾸고 한 부라도 더 찍는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오케이!"
국장의 통화가 끊어지기도 전에 내 손은 윤전관리실의 내선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기계 잡아주세요. 급합니다."
'끼기기기긱~' 하며 윤전기가 멈춰 서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과장된 표현이다. 이후에 알게된 바로는 급브레이크 밟듯 윤전기를 세울 수는 없다. 기계에 무리가 가지 않게 천천히 세운다).
12시 30분을 가리키는 편집국 시계 아래로 편집부장이 다시 사무실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부터 중요한 건, 그야말로 '스피드'. 기사를 독촉하고, 1면의 구성을 바꿨다. 그러는 사이에 또 하나의 속보가 떴다.

그럼 그렇지. 이젠 ICBM급인지 아닌지만 남았는데 윤전기를 세운 이상 속보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기사가 출고되자마자 지면을 강판(降版·편집 데이터를 윤전으로 전송하는 행위로, 판을 내린다는 의미)할 수 있도록 제목은 완성돼 있어야 했다. 밤 뉴스이니 스트레이트(straight·팩트 중심 제목)로 간다.

헤드라인을 바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방 담당 기자가 기사를 전송했다. 기사를 지면에 흘리고 교열을 본 후 강판. 새벽 1시가 되기 전에 모든 상황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그 어떤 뉴스가 나온다 해도 지면을 바꾸거나 기계를 세울 수는 없다.

재가동된 윤전기가 최고 속도에 도달했을 때 새 뉴스가 올라왔다.

인쇄가 7부 능선을 넘어갈 즈음엔 우리 군의 발표가 나왔다.
(01시 40분)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날 북한이 쏜 미사일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되었고,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군사 공격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은 최고조로 치닫게 된다.)
새벽 2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의 야근이 무사히 끝났음을 알리는 전화였다.
"윤전인데요. 종쇄(인쇄 종료)됐습니다. 최종판 44만부 찍었습니다."

#퇴근 택시 안
휴대폰에 속보를 알리는 팝업 메시지가 뜬다.
(02시 40분)

1면 헤드라인에 'ICBM'이란 키워드는 넣지 못했다. 신문이 배달될 아침이면 모든 방송과 인터넷 매체가 북한의 ICBM 발사 소식을 전할 것이다. 미국 국방부가 조금만 일찍 확인해 줬더라면 제목에 반영했을 텐데.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다. '한밤에 쐈다는데 아침 신문에 났네' 하고 놀라는 독자가 44만명 중에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근데 제목에 '동해로'는 쓸데없이 왜 넣었을까. '기습 발사'란 표현이 들어갔어야 했는데. 현관문을 열면서 되뇐다. 당연히 동해로 쐈겠지. 샤워하는 내내 아쉬워한다.

‘기습’을 놓치다니. 서해로 쐈을 리가 없잖아, 잠자리에 누워서도 후회한다. 참 어리석다.

2017년 7월 29일자 조선일보 1면 52판(왼쪽)과 53판 지면. 52판 톱기사였던 ‘사드 배치’ 기사가 아래쪽으로 밀려나고, 53판엔 ‘한밤 탄도미사일’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