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일본 TV아사히 '뮤직스테이션' 출연이 전격 취소된 데 이어 다음 달 방영될 NHK '홍백가합전', 후지TV 'FNS가요제', TV아사히 '뮤직스테이션 수퍼라이브' 등에서도 BTS 출연을 줄줄이 철회했다. 지난 8일 TV아사히 뮤직스테이션 측은 작년 월드투어 때 BTS 멤버 지민이 입은 광복절 티셔츠와 관련해 "종합적 판단 결과, 출연을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민이 입은 티셔츠엔 원폭투하 사진과 애국심 해방 코리아 등의 문구가 영어로 새겨져 있다.

우리 대중음악 관계자들은 연이어 출연이 무산된 방송이 모두 일본 대표 연말 가요제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한 해 안방 시청률을 가장 끌어올리는 각 방송사의 주요 간판 연말 음악방송에서 민감한 국민 정서를 거스르는 화두는 피하고 싶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매년 12월 31일 방송되는 'NHK 홍백가합전'은 출연 자체가 최고 인기 가수임을 인증하는 일본 최고 권위의 연말 가요제다. 일본 내 인기가 큰 동방신기·트와이스·BTS가 올해 출연자로 거론돼왔고, 티셔츠 논란이 일자 '2ch' 등 일본 내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BTS의 홍백가합전 출연을 막자"는 반응이 가장 먼저 나왔다.

BTS의 일본 방송 출연이 잇달아 무산되자 “일본 방송사들이 정치·역사적 문제를 지나치게 의식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 방송들의 이 같은 결정은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무관치 않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독도·위안부 문제가 첨예하게 불거졌던 2012년부터 2016년 사이 '홍백가합전' 출연자 리스트에는 한국 가수들 이름이 전혀 오르지 않았다. 미국 빌보드지와 CNN, 영국 BBC 인터넷판 등 해외 외신들도 "지민의 티셔츠만이 이번 논란의 유일한 이유가 아니다"라며 양국의 정치·문화적 역사 배경에 주목했다. 미국 CNN은 "과거 일본의 식민 지배로 한국인이 고통받은 게 양국 관계에 지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해외 각지에 포진한 BTS 팬클럽 아미는 문제가 된 '광복티셔츠'를 일부러 완판시키거나 이번 사태를 알리는 트위터 해시태그(#)를 퍼뜨리고 있다. "일본의 역사 만행을 해외에 알리게 된 치졸한 자충수"라는 비난과 함께 국내 '디씨인사이드' '일베' 같은 사이트에서는 "우리도 일본 걸그룹 AKB48 멤버가 속한 아이즈원 방송 출연을 막자"는 극단적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대중음악계에서는 다른 한류 가수들의 일본 방송 출연까지 취소될까봐 주시하고 있다. 홍백가합전 출연 경험이 있는 JYP 관계자는 "이 사태가 연말까지 이어지면 홍백가합전에 초청을 받아도 논란, 안 받아도 논란이 될 판"이라고 했다. 일본 스포츠연예지 스포니치아넥스는 이번 사태와 관련, "10대 여·중고생의 인기에 힘입어 더 커질 것이라던 3차 한류 붐에 찬물을 끼얹은 모양새"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