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현 여론독자부 차장

요즘은 그야말로 '요약 전성시대'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강의 내용이나 부동산 대책은 물론이고, 책과 영화 내용도 10분 안팎으로 간추려주는 '온라인 요약정리 서비스'가 등장했다. 심지어 설교도 10분 요약을 해준단다. 현대인들의 숨 가쁜 일상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독서와 설교가 즉석 간편 식품도 아니고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온라인 요약 서비스는 현대인들의 일상적 고민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현대인들은 아침 알람이 울리기 무섭게 쏟아지는 정보의 바다에서 온종일 허우적거리다가 지쳐서 쓰러진다. 그러면 요약 서비스가 곁에 다가와 속삭인다. '내가 너의 짐을 덜어줄게.' 당장은 이 말에 용기백배하겠지만, 다시 지쳐서 쓰러질 즈음이면 또 다른 신종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역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신조어 'TMI(too much information)'도 등장했다. '너무나 많은 정보'라는 뜻이다. 사회과학에서는 '정보 과부하(過負荷)'라는 용어로 이런 현상을 설명한다. 정보 과부하의 부작용은 피로의 누적에서 그치지 않는다. 더 치명적인 건 인간과 정보의 관계가 물구나무선 것처럼 역전된다는 점이다. 인간이 만든 정보에 인간 스스로 부대끼고 치이는 꼴이다.

본래 여행의 참된 재미는 목적지로 향하던 경로에서 벗어나 길을 잃고 헤매는 과정에 있다. 동해안 일출을 보았던 기억만큼이나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해 뜨는 광경을 놓치고 말았던 에피소드가 생생하게 남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의 기억은 성공과 실패의 잣대로만 나뉘는 것은 아니다.

독서와 영화 감상 같은 문화적 체험 역시 마찬가지다. 요약과 압축은 무엇보다 잔재미와 디테일을 앗아가 버린다. 치열한 고민이 수반되는 추론 과정을 생략한 채 결론만 제시하는 것이 사고력 향상에도 도움될 리 없다. 영미권 대학에서 "강의실에서 발표 요약을 위한 파워포인트(PPT)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장 대안을 내놓으라는 닦달이 쏟아질 것만 같다. 다이어트를 위해선 식사량 조절이 필수적이다. 가계 빚을 줄이려면 이자만이 아니라 원금도 꼬박꼬박 갚아야 한다. 마찬가지다. 정보 과부하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다면 요약 서비스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정보 유입량 자체를 줄여야 한다.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곁눈질하는 시간을 줄이고, 각종 메신저와 카톡을 과감하게 정리해서 휴대전화에 빼앗겼던 시간을 되찾아야 한다. 그 시간을 여행과 산책, 독서 같은 아날로그적 체험에 재투자하는 '정보의 구조조정'이 필수적이다. 우리가 줄여야 하는 건 몸무게와 가계 부채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