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유니세프(UNICEF·유엔아동기금)의 인도적 대북 지원 요청을 승인하고, 북한에 46만달러(약 5억원) 상당의 물품을 반입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고 미국의소리(VOA)가 8일 보도했다.

대북제재위 의장을 맡고 있는 카렐 판 오스테롬 유엔주재 네덜란드 대사는 위원회가 지난달 24일 유니세프에 보낸 서한에서 일부 품목에 대해 대북제재 유예 요청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유니세프는 북한에서 결핵과 말라리아 퇴치·예방접종 등 인도주의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물품의 반입을 위해 지난 8월 27일 대북제재위에 제재 유예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판 오스테롬 대사는 이번 서한에서 "안보리 결의를 통한 북한과 관련된 제재 조치는 북한 주민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의도가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고 말했다.

영양실조에 걸린 북한 어린이가 건강 테스트를 받고 있는 모습.

대북제재위는 유니세프가 북한에 반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 물품 목록도 함께 공개했다. 엑스레이와 환자용 침대 등 의료 장비와 함께 냉동용 트럭 등의 반입이 허용됐다. 이런 목록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목록에 오른 각 물품에는 ‘승인(Approved)’이라는 표시와 함께 금액, 거래에 관여한 회사 이름, 북한 반입시 출·도착 항구 정보 등이 명시됐다. 물품의 구체적 설명과 사용 목적 등도 상세하게 기록됐다.

대북제재위가 반입을 허용한 물품 중 가장 고가는 7만4189달러(약 8400만원)짜리 유럽산 엑스레이 장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비는 덴마크 코펜하겐 항구에서 중국 다롄항을 거쳐 북한 남포항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유니세프 직원이 이 장비가 목적에 맞게 사용되는지 감시할 것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이외에 예방접종 약품을 공항에서 의약품 보관시설로 이동하는 데 필요한 냉동트럭 1대, 중국산 엑스레이 1개, 실험실 장비5개, 실험실용 전기 장비 6개, 병원용 디지털 카메라 1개, 백신 저온유지장비 2개, 태양광 패널 1개, 수술실용 조명을 포함한 수술실 기구 13개 등이 허가 품목에 포함됐다. 말라리아 예방 물품 2세트와 결핵 예방 물품 1세트 등도 반입이 허가됐다.

이번에 반입이 허용된 물품 대부분은 중국산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 총액은 46만8816달러(약 5억2700만원) 규모로 집계됐지만, 백신 저온유지장비 1개의 금액이 목록에 표기되지 않아 실제 총액은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승인된 물품들이 북한에 유입될 수 있는 기간은 지난달 19일부터 내년 4월 19일까지다.

안보리는 북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자금줄 차단을 위해 2006년부터 대북 제재 수위를 강화했다. 인도적 지원을 목적으로 구호단체 등이 북한에 물품을 반입하려면 사전에 안보리 대북제재위에 제재 면제를 요청해야 한다. 대북제재위의 15개 이사국이 모두 찬성하면 승인된다.

앞서 로이터는 이날 대북제재위가 인도주의 단체들의 대북 지원 승인 요청을 수개월 간 처리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강력한 대북제재 고수’ 방침을 강조해온 미국이 검토 시간을 더 달라고 요구하며 시간을 끌었기 때문이다.

안보리는 러시아의 요청으로 8일 여는 비공개 회의에서 북한 제재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른 대북제재 해제·완화를 주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