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한 해 동안 정부가 국민에게 조건 없이 돈을 나눠주는 이른바 '현금 복지' 예산이 33조원을 넘어서 역대 최고치에 달할 전망이다. 사상 처음으로 '30조원' 선이 깨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여당은 물론 야당까지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확대 등 현금 퍼주기 복지 경쟁을 벌이고 있어 국회 심의 과정에서 현금 복지 예산은 되레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재정 전문가들은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 확대는 필요하지만 정치권이 '표(票)'만 의식해 현금 살포 대상자와 금액만 마구 늘리면 정책 효과도 보지 못하고 나라 곳간만 축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8일 본지가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노동부·국가보훈처 등 정부 부처들이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을 분석한 결과, 현금 복지 예산이 중앙정부(27조2000억원)와 지방자치단체(6조1000억원)를 합쳐 총 33조3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정부는 0~5세 영유아를 키우는 가정 중 소득 상위 10%만 빼고 나머지 가정에 아동수당을 지급했는데 앞으로 여야가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소득 상위 10%까지 모든 가정에 아동수당을 주는 쪽으로 지급 대상을 넓히면 현금 복지 예산은 이보다 더 불어난다.

전문가들은 "사회복지를 확충해야 하는 건 모두 동의하지만 이 속도로 예산을 늘리면 나라 살림에 부담이 크다"고 걱정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우리나라 현금 복지 예산은 22조8500억원이었다. 이 돈이 올해 26조1000억원으로 3조2500억원 불어났다. 내년엔 여기서 7조2000억원이 더 불어나 33조3000억원이 된다. 불과 2년 새 예산이 10조원 넘게 늘어났다. 10조원이면 우리나라 1년치 연구개발(R&D) 예산(20조원)을 1.5배 늘릴 수 있는 돈이다.

현금복지 예산 중 가장 덩치가 큰 건 기초연금이다. 65세 이상 인구 중 소득 상위 30%를 뺀 나머지 70%에게 지급하는데 내년 부담만 14조9000억원이다. 올해보다 3조원 많다. 올해 9월부터 지급액을 20만원에서 25만원으로 올린 데다, 내년부터 소득 하위 20%(159만명)에게 30만원씩 조기 인상하면서 생긴 일이다.

지금까지는 기초생활수급자 가운데 자식이 있는 사람은 불이익이 있었지만, 내년부터는 자식 유무 조건을 폐지하거나 완화했다. 그로 인해 관련 예산이 1조7000억원 증액됐다.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경제연구부장은 "기초연금은 도입 당시 국민연금 수급률이 낮은 상태에서 단기 대책으로 급조한 것"이라며 "국민연금 수급률이 높아지면 기초연금은 이에 맞춰 줄여야 하는데 오히려 늘리고 있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조세연구원장을 역임한 황성현 인하대 교수(재정학회 회장)는 "복지 확대와 소득주도성장은 꼭 해야 할 정책이고 현금 복지는 현물보다 효과가 좋다"면서도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정부가 신뢰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번 통계에서는 국민연금·공무원연금·실업급여처럼 보험료를 낸 사람에게 주는 돈이나 의료급여·영유아 보육료·장학금처럼 병원·보육시설·학교를 통해 간접적으로 주는 돈, 노인 일자리 등 노동에 대한 반대급부로 받는 일자리 예산은 제외했다. 직업훈련수당·교통비처럼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받는 현금은 포함했다.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 복지 예산도 운영비는 제외하고 순수 개인에게 지급되는 예산만 계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