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부산 벡스코 제2전시장(3200㎡·1000평)에 112개 일본 기업이 차린 채용 부스가 빽빽하게 들어섰다. 정장 차림의 한국 청년 1000여명이 전국 각지에서 새벽밥 먹고 부산에 달려와 행사장을 메웠다.

이날 행사는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층의 숨통을 틔워주려고 우리 정부가 일본 기업을 불러모아 조직한 '2018 일본 해외 취업박람회'다. 이날 부산에 이어 7일 서울에서도 열린다. 일본 취업 행사 중 최대 규모다.

5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2018 일본 취업 박람회’에서 청년들이 일본 기업들이 차린 부스를 돌아다니며 일본 취업 정보를 얻고 있다. 이 박람회는 정부가 한국 청년들의 취업난을 덜어주기 위해 일본 기업을 유치해 개최한 것이다. 소프트뱅크 등 일본 기업 112곳이 700여개 일자리를 들고 찾아왔다. 이날 하루 한국 청년 1000여명이 박람회를 찾았다.

이 두 차례 행사에서 한국 청년 700여명을 뽑아가겠다는 게 일본 기업들 목표다. 그러기 위해 한국 청년들의 지원 6200건을 받아 사전 서류 심사를 통해 2500여건을 추렸다.

이날 박람회는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한·일 양국의 경제가 얼마나 정반대로 치닫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줬다. 한국은 대기업도 1년 이상 계약의 상용직 근로자 채용을 줄이는데, 일본은 소프트뱅크·닛산자동차·전일본공수항공(ANA) 같은 초우량 기업이 한국인을 뽑겠다고 단체로 날아왔다. 세계 LCD 유리 20%를 생산하는 일본전기초자, 일본 3대 테마 파크인 하우스텐보스도 왔다.

정혁 코트라 글로벌일자리실장은 "작년까지는 전 세계 기업들로 취업박람회를 꾸렸는데, 올해는 일본 기업들이 질 좋은 일자리를 특히 많이 들고 와 '일본 단독'으로 열게 됐다"고 했다.

일본은 장기 불황을 털고 경기를 되살린 뒤 사람이 없어 자국 일자리를 외국에 나눠주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은 청년실업률이 5년째 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11.6%까지 오르기도 했다. 체감 청년 실업률은 22.7%까지 올랐다.

'일본 취업 박람회' 가득찬 청년들 - 5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2018 일본 취업 박람회’에서 청년들이 일본 취업 환경에 관한 강연을 듣고 있다. 이 행사는 취업난에 시달리는 한국 청년들과 구인난에 시달리는 일본 기업이 만나는 자리였다. 한국 청년들은 특히 일본 IT 업계에 많이 취업한다. 이날 부스를 차린 일본 기업의 30%가 IT 업종이었다.

이날 행사장의 열기에 고용노동부 공무원들도 놀라워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부산인데도 이렇게 열기가 뜨겁다는 건 그만큼 우리 청년들이 일본 취업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라며 "7일 서울 행사 땐 더 붐빌 것 같다"고 했다.

대전에 사는 대학생 김모(24)씨는 일본 IT 업체 부스에서 면접을 봤다. 일본인 인사 담당자가 전공을 물은 뒤 "왜 일본에서 일하려 하느냐"고 했다. 김씨는 "우리나라는 갈수록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데 일본은 여유가 있는 거 같아서 지원하게 됐다"며 "일본 무역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사내 분위기도 좋았다"고 했다. 김민규(24·충북대)씨는 "일본 기업에 취직하면 월 30만원 정도만 내면 숙소가 제공된다"며 "서울에서 취업하면 월급 대부분이 집값으로 나가는데, 일본에선 그런 문제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종업원 1000명 이상 일본 대기업 초임은 월 21만1100엔(약 210만원)이었다. 우리나라 대기업 신입사원은 월 300만원 넘게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청년 구직자들이 대거 몰린 것이다.

일본 총무성은 지난 9월 구직자 1명당 일자리 수를 나타내는 '구인배율(1.64)'이 1970년대 고도성장기 이후 44년8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고 발표했다. 구직자 1명당 일자리 1.64개가 있다는 뜻이다. 한 일본 IT 기업 담당자는 "워낙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언어가 잘 통하고 능력도 좋은 한국 청년들을 많이 뽑고 있다"면서 "때때로 말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어 면접 때 회사에 꾸준히 다닐 사람인지를 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반면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우리나라 9월 구인배율(0.60)은 일본의 3분의 1을 겨우 넘겼다. 일본은 구직자 1명을 놓고 기업 1.64개가 싸우는데, 우리는 반대로 구직자 1.67명이 일자리 하나를 놓고 '의자 뺏기'를 하는 상황이다.

행사에 참가한 대학생 이현준(24·부산 동의대)씨가 "일본에서 잠깐 일할 때 구성원들이 서로를 키워주며 조직과 함께 성장해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한국 기업들은 처음부터 완벽한 인재를 요구하고 기준에 맞지 않으면 내쳐버릴 것 같다"고 했다.

한국 청년들이 가장 많이 취업하는 일본 기업은 대체로 IT 업계였다. 박람회장에 부스를 차린 일본 기업 열 곳 중 세 곳(30%)이 IT·정보 업종이기도 했다.

일본 기업들이 인구 구조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하려는 측면도 있다. 30년 넘게 인사 업무를 담당했다는 제조업체 미스미의 모리시타 도구야 과장은 "저출산으로 국내 청년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 대비해 해외 인재 채용을 확대하는 추세"라고 했다. 대구 영진전문대의 경우 해외에 취업한 올해 2월 졸업생 160명 중 145명이 일본을 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48명이 일본 기업 중에서도 IT 업종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