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인문학
김동훈 지음 | 민음사 | 486쪽 | 1만8000원

"샤넬에게 시골 수도원에 버려졌던 유년기 기억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취였다. (…) 그녀는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나 ‘샤넬 넘버5’를 만든다."

서양 고전학자 김동훈이 브랜드를 통해 ‘욕망의 생성과 이동’을 철학적으로 분석했다. 우리가 선호하는 브랜드가 어떤 지점에서 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지 살펴보면, 나의 정체성을 찾거나 욕구불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로 성공한 샤넬은 수년간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미국으로 돈을 벌러 갔기 때문에 친척 집에서 자랐다고 꾸며댔지만, 사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시골 수도원에서 성장한 고아였다. 그는 연인의 죽음으로 절망하던 중 잊고 싶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과거 수도원 시절 수녀원들이 가꾸던 시나몬과 레몬의 향기를 기억해 향수 ‘넘버5’를 만들었다.

프라다 역시 과거의 잠재력을 혁신으로 만들었다. 사회당원이자 페미니스트였던 미우치아 프라다는 쓰러져가는 가업을 물려받은 후 자신의 신념을 특별한 패션 감각으로 승화시켰다. 여성의 몸보다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우아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이 그것. 그런가 하면 발렌시아가는 3세기 전 스페인 왕가 사람들이 즐겨 입던 의상을 세상으로 끌고 나와 시민에게 입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는가? 브랜드에 대한 끝없는 욕망은 자신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욕망’이 몸에 배면 취향이 된다. 이때의 욕망을 들뢰즈와 가타리는 ‘기계적 욕망’이라 불렀다. 우리 손이 운전대를 잡으면 운전하는 손이 되고, 다른 사람의 손과 접속하면 악수하는 손이 되듯이 정체성은 내 손에 있지 않고 접속과 배치를 통해 확립된다. 그때 무엇과 접속하고 싶은지는 나를 자극하는 대상과 내 욕망의 문제다.

즉, 프라다에 끌린다면 그 저변에 흐르는 ‘우아한 실용성’이, 발렌시아가에 끌린다면 ‘귀족적인 품위’가 내 감각이 지향하는 바다. 이러한 취향은 각자의 분야에서 혁신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허영이나 시장적 취향에 대한 저항력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