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수확이 한창이다. 온갖 새들이 날아다니는 가운데 벌거벗은 사내아이들도 마치 나는 듯 넝쿨을 타고 다니며 주렁주렁 열린 포도를 따고 있다. 그렇게 모은 포도를 소달구지에 실어 양조장으로 옮기면, 건장한 남자들이 연신 발로 밟아 포도즙을 짜낸다. 단지 안에 가득 고인 포도즙은 숙성을 거쳐 포도주가 될 것이다.

포도 수확, 4세기 중반, 로마 산타 코스탄차 교회의 천장 모자이크.

이처럼 기묘한 새들이 노닐고 꽃과 포도 넝쿨이 흐드러진 화려한 모자이크는 로마 시대 귀족들의 저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내 장식이었다. 물론 포도주가 흘러넘치는 장면은 포도주의 신이자 풍요의 신, 그리고 기쁨과 광란을 이끄는 신, 바쿠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모자이크는 로마의 산타 코스탄차(Santa Costanza) 교회의 천장을 장식하고 있으니, 이교도의 신인 바쿠스의 포도주일 리가 없다. 일반 저택이었다면 바쿠스를 상징했겠지만, 교회의 천장인 만큼 성찬식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누어 준, 예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다. 신생 종교였던 기독교의 초기 미술은 이렇게 이교도들의 기존 문화와 종교로부터 빌려 온 이미지에 새로운 의미를 입혀 사용했던 것이다.

산타 코스탄차 교회는 오랫동안 로마 제국 최초의 기독교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맏딸 콘스탄티나를 위해 지어둔 무덤 건물이라고 알려졌었다. 그러나 1992년의 발굴 조사에서 이 건물은 콘스탄티나가 사망한 다음인 36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둘째 딸이자 당시 황제였던 줄리안의 아내 헬레나를 위해 지은 무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마도 중세 이후 콘스탄티나가 성인으로 추대되고 추종자가 늘어나자 무덤의 주인도 뒤바뀐 채 알려졌던 모양이다. ‘이미 정해져 있는 건 미래고, 계속 변하는 건 과거’라고 했던 한 고고학자의 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