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주 디지털편집국 사회부장

1990년 도널드 트럼프는 타지마할 카지노에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코너에 몰렸다. '트럼프 빚더미에' 같은 기사가 나왔다. 그는 앙증맞은 입술에 힘을 꽉 주며 "악의적인 거짓 기사(false and malicious article)"라고 했다. 그는 결국 파산했다. 복잡한 말로는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트럼프는 대선 캠페인에서 새로운 말을 애용했다. 페이크 뉴스(fake news), 가짜 뉴스. 트럼프는 그 말의 발명자는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유행시켰다.

작년 6월,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문재인 대통령이 "나도 '가짜 뉴스'로 고생했다"고 할 때부터 좀 불길했다. 정치 이념으로나, 살아온 이력에서 두 사람은 '상극'으로 보였는데, 유독 이 문제를 두고는 '찰떡궁합'이었다.

얼마 전,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짜 뉴스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말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가짜 뉴스 팩트 체크' 시스템을 도입하는 내용으로 문건을 만들었다가 공개하지는 않았다. '국민이 속지 않도록' 하는 명분이지만, 이게 카다피나 김정은 방식이라는 걸 스스로도 알았을 거다.

'냉면 목구멍' 발언은 지난달 29일 국정감사장에서 나왔다.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리선권이 방북한 재벌 회장들에게 이렇게 면박을 줬나" 하고 묻자,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고 답했다. '이런 굴욕이 어디 있느냐'는 공분(公憤)이 일자, 정부 여당에서는 '꼭 뭐 확인된 건 아니다' 식으로 나오고 있다.

국감을 통해 알려져 다행이다. 이런 이유에서 그렇다.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리선권, 방북 기업 총수들에 면박〉 이런 기사가 특정 언론사 단독 기사로 나갔다 상상해보자. 아침 10시쯤 청와대 관계자가 "남북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적의(敵意) 찬 오보"라며 신문을 흔들며 화를 냈을 것이다. 그날 정오 무렵, 진보 언론이 편들고 '문빠'들이 거들며 '가짜 뉴스' 낙인찍기 작업이 시작된다.

문제의 언론사는 '취재원 보호' 원칙 때문에 실명(實名)을 공개하지 못한다. 다른 언론들은 방북 기업 홍보 담당자들에게 열심히 전화를 돌릴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응대할 것이다. "회장께서 기억이 없다고 하신다."

결국 이건 '수구 적폐 세력의 반(反)통일적 가짜 뉴스'로 확정된다. 기자 신상을 캐고, 언론사 게시판에는 상소리가 넘쳐난다. 그 언론사가 방송이었다면 '방통위 제재'를, 신문이었다면 '정정 보도문 결정'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가짜 뉴스' 시대가 아닌, '가짜 뉴스라 낙인찍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게 어느 한쪽에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녀, 노소,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불쾌한 뉴스'는 다 '가짜 뉴스'라고 주장한다.

"진리와 허위가 맞붙어 싸우게 하라. 자유롭고 공개적인 대결에서 진리가 진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존 밀턴이 출판의 자유를 촉구하며 1644년에 쓴 책 '아레오파지티카'에 나온다.

"진리에 관한 최상의 테스트는 시장에서 경쟁시키는 것." 미국의 '위대한 법사상가'라는 올리버 웬들 홈스도 1919년 판결문에 이렇게 썼다. 물론 그 위대한 분들의 시대에는 인터넷이 없었다. 진실은 자주 위협받는다. 그렇다고 권력이 '이건 가짜, 저건 진실' 통제할 수는 없다. 불가능하다. '인민 민주주의'가 아닌 '자유 민주주의'에서는 대개 사실과 거짓을 '시민의 시장'에서 다룬다. 정부는 뒤에 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