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나서서 큰 사업을 하면서 주민들에게 한마디 설명도 안 하다니 대놓고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29일 전북 군산시 내초마을의 주민 문명덕(67)씨는 인근 새만금 매립 부지에 대규모 태양광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내초마을은 정부가 짓겠다는 태양광 시설 부지에서 400m쯤 떨어져 있다. 문씨는 태양광 시설에 대한 정부의 계획을 기자에게 처음 들었다고 했다. 문씨는 "이 정도로 계획이 구체적이면 상당 기간 준비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주민들만 모르고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마을에서 만난 주민 5명 모두 문씨처럼 대규모 태양광 시설이 들어선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태양광 예정 부지 가리키는 주민 - 전북 군산시 내초마을 주민 고양석(56)씨가 새만금 태양광 설치 예정 부지를 가리키고 있다. 정부는 이곳 120만평 부지에 0.3GW(기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시설을 짓는다고 했다. 사진 뒤편으로 보이는 태양광 시설은 지난 2016년 중국 업체 CNPV사가 15만7931㎡(5만평)에 10.87㎿ 규모로 지은 것이다.

지난 2016년 이 마을에서 300m쯤 떨어진 새만금 매립 부지에 중국 업체 CNPV사가 태양광 시설을 지었다. 15만7931㎡(5만평)에 10.87㎿ 규모였다. 당시 내초마을 주민들은 공사가 시작되고서야 태양광 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가 30일 발표하는 '새만금 태양광·풍력 발전 사업'은 새만금 방조제 안쪽에만 1171만평 땅에 태양광·풍력 발전 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고윤석 내초마을 이장은 "한 번 속지 두 번 속지 않는다"며 "전에 있던 태양광보다 수백 배 큰 시설이 들어서는데, 이를 이장에게도 말하지 않은 행정 당국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장 군산시에 항의 전화를 할 것"이라며 "내일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면 주민들과 함께 나가 태양광 반대 시위를 하겠다"고 말했다.

새만금 태양광 예정 부지에서 600m쯤 떨어진 군산 장전·산동·남수라 마을 주민들도 반발했다. 군산 공군기지 인근에 있는 이 마을 주민들은 "전투기 소음으로 수십 년 동안 고통을 받아왔는데, 태양광까지 깔리면 더는 사람 살 수 없는 동네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장전마을 주민 김모(54)씨는 "당초 새만금 땅을 메워 농지로 만들어 농민들에게 분할권을 준다고 했는데, 이제는 태양광을 설치한다니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정 대표는 정부가 전북 새만금 일대에 초대형 태양광·풍력 발전 단지를 조성하려는 것에 대해“충격적인 일”이라고 했다. 왼쪽부터 유성엽 최고위원, 정 대표, 장병완 원내대표.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정부의 새만금 사업 계획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정동영 평화당 대표는 "도민 의견 수렴이나 공청회도 없이 느닷없이 사업 계획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새만금을 환황해권 경제 거점으로 조성하겠다는 의지엔 변함이 없다"고 했지만, 야당 의원들은 "새만금 땅 8분의 1에 태양광을 깔면 사업 방향이 유지가 되겠느냐"고 반박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새만금 태양광 사업 논란은) 국정이 전체적으로 난맥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야당들은 청와대가 2030년까지 전체 전력의 2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신재생에너지3020' 국정 과제 실현을 위해 새만금 사업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런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는 전북도청과 새만금개발청 주도로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야당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청와대에서 '새만금에 태양광만 깔면 신재생에너지3020은 한 번에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고 했다. 전북도청 관계자는 "청와대 자치발전비서관실에서 새만금 사업을 주도한 건 도청과 새만금개발청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라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날 '청와대 주도하에 비밀리에 진행됐다'는 주장에 대해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태양광·풍력발전 설치를) 어떻게 비공개로 추진할 수 있겠나"라며 "아시다시피 새만금은 전북도의 숙원 사업인데 전북의 수많은 관계자, 관계 기관과 쭉 상의해왔다고 보는 게 상식"이라고 했다. 이어 "해당 사업은 주관 기관이 전북도청과 새만금청"이라고 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는 지역의 논의 과정을 조율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고 했다.

전북도청은 이날 사실상 '환영' 입장을 밝혔다. 전북도청 측은 "지난 6월부터 새만금개발청과 전북도 등이 전담반을 구성해 논의했다"며 "향후 여론 수렴 등 공론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