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 생산의 80%를 차지하는 현대·기아차의 3분기(7~9월)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4분의 1로 줄어들었다. 매출 대비 영업 이익률은 현대차 1.2%, 기아차 0.8%로 예금 금리보다 못 한 수준이다. 미국·중국 시장에서 밀려나고 인도·동남아 등 신흥국 시장에서도 판매가 줄었다. 자동차 경기가 나쁜 것도 아니다. 도요타·폴크스바겐 같은 글로벌 '빅4'의 영업 이익률은 올 상반기 5% 를 넘어섰다. 우리만 총체적 부진에 빠졌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쇠락해가고 있다는 뜻이다.

현대·기아차의 추락 이유는 '이 가격에 살 이유가 있느냐'는 한마디로 집약된다. 브랜드 파워는 경쟁사들에 뒤지는데 가격 경쟁력은 급속하게 떨어지고 있다. 현대차가 미국 시장의 전략 수출품으로 역점을 둔 제네시스는 도요타 렉서스 같은 경쟁 차종보다 결코 싸지 않다. 일본 정부의 엔저 정책 때문에 현대 쏘나타의 미국 내 판매 가격이 일본 경쟁차인 캠리보다 비싸지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현대차의 품질이나 브랜드 가치가 우월하지도 않다. 미국·중국 등 주력 시장에선 '같은 값이면 한국차를 살 이유가 없다'는 소비자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경영진의 혁신 부족과 강성 귀족 노조의 고임금 투쟁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 경영진은 기술과 품질의 새로운 혁신을 이뤄내는 데 실패했다. SUV로 이동한 시장 트렌드조차 제대로 읽지 못했다. 세계 최악의 강성 노조는 현대차의 저효율·고비용 구조를 완전히 고착시켰다. 현대차 울산 공장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세계 1위 메이커인 폴크스바겐(8040만원)보다 1000만원 이상 높다. 생산성은 경쟁사 공장에 뒤지면서 급여는 훨씬 더 많다. 그런데도 현대차 노조는 올해도 두 차례나 부분 파업을 벌였다. 이런 회사가 잘되면 그것은 기적이다.

제조업 생산의 14%, 수출의 11%를 차지하는 자동차 산업의 침체는 한국 경제를 뿌리째 흔들 중대한 문제다. 8000여 부품업체 위기로 이어지고, 간접 고용까지 따지면 177만명의 일자리가 위협받는다. 현대·기아차를 보면서 외환 위기 당시 기아차 사태가 떠오른다는 사람이 많다. 기아차 부실은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키면서 국가 부도를 부른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불길한 현상은 경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주력 산업이 흔들리면서 경제의 핵심 성장 동력인 설비투자가 6개월째 마이너스를 이어가고 있다. 청년(15~29세) 실업률이 10%를 넘어 외환 위기 이후 최악이고, 3분기 실업자는 19년 만에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었다. 미·중 무역 전쟁과 신흥국 경제 불안 등 외풍도 심각하다. 경제성장률과 실업률 등 주요 경제지표가 미국에 역전당하는 외환 위기 당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정부가 손 놓고 경제를 방치하고 있는 것까지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