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3일 국무회의에서 '평양 선언'과 '남북 군사합의서'를 심의·의결한 뒤 비준한 것을 두고 학계에서는 "국회의 비준 동의권을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헌법은 국가 안전 보장에 관한 조약, 중대한 재정적 부담이 되는 조약 등은 국회 비준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사실상 '위반'했다는 것이다. 앞서 '판문점 선언'은 국회에 비준 동의를 요청해 놓고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의 '평양 선언'과 '남북 군사합의서'는 그런 절차를 건너뛴 것에 대해 야권을 중심으로 "근거 법도 없이 부수 법안부터 처리한 정치적·법률적 무리수이자 '국회 패싱'"이란 비판도 나왔다.

이날 대통령 비준에 앞서 법제처는 "평양 선언은 판문점 선언의 이행 성격이 강한데, 판문점 선언이 이미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밟고 있어 평양 선언은 따로 국회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평양 선언의 경우 판문점 선언에 포함된 사업 외에 추가로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수반하는 내용이 들어 있지 않아 '남북관계발전법상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 합의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판문점 선언'은 '동해선·경의선 철도 도로 연결 및 현대화를 추진한다'고 돼 있고, '평양 선언'에는 '남북은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에는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지 않아 국회 동의가 필요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법제처의 해석에 문제의 소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문점 선언의 후속 조치이기 때문에 국회 동의 사안이 아니라는 법제처 주장은 어불성설이며, 국회 동의 사안의 기준은 입법 사항인지, 재정적 부담을 수반하는지 여부"라며 "판문점·평양 선언에 일관성 없는 법 해석을 적용하면서 오해와 혼란이 커졌다"고 했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청와대가 평양 선언이 독자적 선언으로 효력을 갖는다고 했는데 평양 선언엔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등 예산 조치가 수반되는 행위가 명시돼 있다"며 "국민의 재정 부담을 수반하는 조치 등은 반드시 국회 동의를 받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고문현 한국헌법학회장은 "정부가 착공식 이후 투여되는 도로·철도 예산에 대해 평양 선언 비준을 법적 근거로 주장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이석연 전 처장은 "법제처는 유권해석 시 '비준 후에도 국회 동의 없이는 예산이 수반되는 사업 등은 못 한다'는 단서라도 달아야 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