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담긴다는 점에서, 캔버스는 내면(內面)이다. 서양화가 유희영(78·사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15년 만의 국내 개인전 '유희영의 색면추상'을 서울 갤러리현대에서 11월 4일까지 연다.

정신의 창(窓)으로 곧잘 호명되는 28점의 색면 추상회화는 명상과 회화 가운데 놓여 있다. 안동대 서성록 교수는 "침묵에서 시추한 언어"라 해석했다. 유 화백은 "정서 전달의 가장 즉각적인 요소는 색과 면"이라며 "단조로움의 극한을 향했다"고 말했다. 몇 개의 수직 띠로 화면을 분할하고 그 안에 색을 도포한다.

색채는 서넛 이상이 되지 않으며 화면 겉의 분홍과 보라·파랑 계통의 색채는 모두 여러 색을 배합한 결과로, 색의 가감에 따른 미묘한 차이를 제시한다. "물감은 제한적이어도 색은 무한하다"고 했다. 작품 'Work 2016 G-5'의 경우, 색다른 면모를 보인다. 4개의 색으로 나뉜 아주 얇은 캔버스 한쪽에, 바탕을 칠하지 않고 한지 위 동양화처럼 번짐의 효과를 연출했다. 이것은 커튼을 조금 열었을 때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의 찰나처럼 보인다.

유희영의 ‘Work 2018 G-4’.

1980년대부터 비정형 추상의 외길을 걸어왔다. 공간 위에 내려앉은 색조는 대비보다는 동색의 조화를 이룩한다. "색면추상이라는 요체를 예전보다 더욱 응결시켰다. 나이 먹으면 힘이 아니라 정신으로 그릴 수밖에 없다." 대작(大作)이 많아졌다. "1991년 충북 옥천 산 중턱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멧돼지 내려오는 컴컴하고 큰 공간에 있다 보니 큰 그림을 시도하게 된 면이 있다. 큰 그림을 그리는 건 큰 무대에 서는 것과 같다. 작가의 진가가 드러나는 무대다." 거대한 추상의 이해를 위해 골치 썩을 필요는 없다. "회화는 벽에 걸려 있다. 인위적인 영역이다. 그러나 감상할 때는 다른 무엇도 필요치 않다." (02)2287-3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