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마치 어린아이가 크레용으로 낙서한 듯한 9개의 빨간 선(線)들이 과학자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동굴에서 최근 발견된 돌 하나에 그려진 이 9개의 선들이 무려 7만3000년 전 만들어진 최초 예술 작품 중 하나라는 가능성 때문이다.

물론 과학에서 100% 확신이란 불가능하다. 자연적 현상으로 생겼을 수도 있고, 고대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행동을 하다 우연히 그려진 무의미한 패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미경으로 분석한 미시적 패턴, 화학적 성분, 그리고 비슷한 돌을 사용한 시뮬레이션 결과들은 이 9개의 선들이 의미와 의도를 가진 누군가가 그린 그림의 한 부분이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해진다. 맹수에게 잡히지 않고, 굶지 않고, 따뜻한 잠자리를 확보하는 것이 매일 최고의 목표였을 그들은 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일까?

기존 교과서적 인류의 발달은 단순하다. 사냥과 채집을 하던 고대 인류는 농사를 지으면서 정착하기 시작했고, 그 후 마을과 도시가 탄생한다. 도시라는 공동체가 생기며 계급사회와 종교가 등장했고, 종교와 계급사회는 예술과 문명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터키 괴베클리 테페(Gobekli Tepe) 신전들은 농사를 짓기 전인 기원전 1만년에 세워졌고, 기원전 7000년 요르단 아인 가잘(Ain Ghazal) 지역에서 찰흙으로 빚어진 동상들은 그릇과 도자기를 만들기 전 등장한다. 왜 인간은 그릇보다 동상을 먼저 만들었고, 도시에 정착하기도 전에 신전을 만든 것일까?

현대사회라는 '정글'에서 매일 생존 싸움을 해야 하는 우리들. 당장 도움 되지 않는 것은 쓸모없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과 두려움을 더 중요시했기에 인류는 어쩌면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