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만난 자크 가르시아는 “극작가 장 콕토의 ‘죽음은 삶을 해할 수 없다(La mort ne m'aura pas vivant)는 말을 인생 모토로 삼고 있다”고 했다

고풍스러운 융단은 풍미 깊은 와인처럼 빛나고, 진한 밤나무색 고가구는 듬쑥한 치즈처럼 묵직했다.

마치 18세기 프랑스 궁정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한 마법을 부린 주인공은 '프랑스 인테리어의 황제' 자크 가르시아(Garcia·71). 화려하다 못해 사치스러운 그의 인테리어 명소들은 젊은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다. 파리의 명물 호텔 코스테(Costes)와 뉴욕의 상징 노매드 호텔,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이름을 따 최근 런던에 문 연 로스카 호텔 등이 대표작.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과 루브르 박물관 복원 작업도 그가 진두지휘했다. 뉴욕타임스의 예술비평가 테드 루스는 "'태양왕' 루이 14세를 가리켜 '짐이 곧 국가(state)다'라는 문구를 붙였다면 자크 가르시아에겐 '그가 곧 취향(taste)'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미니멀리즘'이 대세인 요즘 너무 많은 장식 요소를 쏟아부은 가르시아 디자인은 어떻게 젊은 층을 사로잡았을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풍요로웠던 과거에 대한 상상력 넘치는 디자인이 비결"이라고 썼다.

랄프 로렌 진남색 슈트에 벨루티 빨간 양말을 신고 나타난 자크 가르시아는 "나는 고물 수집가(chineur)"라며 웃었다. "루이 14세 때 가구 장인이었던 앙드레 샤를르 불르의 작품을 벼룩시장에서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프랑스에 섬유 장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요. 타시나리, 피에르 프레이 같은 이들이 내놓은 패브릭을 만지면 어머니 품에 안긴 듯 푸근하죠."

자크 가르시아에게 오늘의 명성을 만들어 준 ‘샹 드 바타이유’ 내부. 1992년 매입해 그가 ‘고물’이라고 부르는 골동품들로 리모델링한 자기 집이다. 붉은색 벨벳과 카펫, 액자 등으로 내부를 꾸며 화려하다.

스페인 프랑코 정권 독재에 반대해 망명한 아버지 손에 이끌려 다섯 살 때부터 전국의 벼룩시장과 오래된 성(城)을 찾아다녔다. "문학가인 앙드레 말로 장관 시절 유서 깊은 집을 대중에게 개방하고 문화유산을 후원하면 세금을 보전해 주는 제도가 있었어요. 평소 상상할 수 없었던 아름다운 고택을 탐미했죠. 제가 호텔 디자인에 빠진 것도 지역 주민이 함께 누릴 수 있는 문화 터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

서울에 문 연 레스케이프 호텔의 침실(사진 위), 모던한 디자인의 뉴욕 오르세 레지던스(사진 아래).

그가 유명해진 건 17세기 완공된 노르망디의 '샹드 바타이유(Champs de bataille·전쟁터 왕궁)'를 리모델링 하면서다. 낡고 버려진 공간을 1992년 매입한 그의 집으로, 오랫동안 모아온 골동품으로 장식한 뒤 대중에게 공개했다. 1995년 그가 리모델링한 파리 호텔 코스테는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구찌·발렌시아가를 보유한 프랑수아 피노 회장과 브루나이 왕가에서 가르시아에게 자택 인테리어를 의뢰해 더욱 화제가 됐다. 뉴욕 오르세 레지던스처럼 모던한 스타일에도 능하다. 가르시아를 '디자인계의 지킬과 하이드'라고 부르는 이유다.

최근엔 지난 7월 문 연 서울 레스케이프 호텔을 디자인했다. "제 스타일에 동양미를 미묘하게 추가해 넣었지요. 건물의 영혼은 내부 인테리어와 어우러졌을 때 그 진가가 더욱 돋보이니까요." 그는 "나쁜 취향이 취향이 아예 없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그 가치를 모르고 돈으로만 물건을 놓으면 '무취향'이나 마찬가지. 진정한 감탄은 돈이 아니라 문화적 소양에서 나옵니다."

[자크 가르시아의 인테리어 팁]

1. 좋은 인테리어의 제1 조건은 비율. 집 안에도 '황금 비율'이 있다. 밑면적과 높이를 1대1.6 비율로 맞추면 안정감 있다.

2. 프랑스 궁전처럼 보이고 싶으면 와인, 짙은 보라, 청록색 벨벳 천을 이용해 침대 덮개와 의자 덮개 등으로 응용해볼 것.

3. 패브릭 위에 골드 앤틱 스터드(징) 장식으로 마감하거나 태슬(술) 장식을 곁들이면 고풍스러워 보인다.

4. 침실에 형광등은 금물. 단점이 너무 훤히 드러나 무엇이든 못생겨 보인다. 수면도 방해한다. 조도를 최소한으로 낮추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