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홍어 같아요. 시작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려워요. 그러니 안 마셔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마시는 사람은 없다고들 하는 거죠."

회현동의 한 호텔 레스토랑 ‘라망 시크레’에서 파는 내추럴 레드 와인 ‘구트 오가우―조세핀’ 병엔 강렬한 인상의 여자 얼굴이 새겨져 있다. 와인의 맛을 사람 얼굴로 의인화해 표현한 것이다. 내추럴 와인엔 병 라벨에 독특한 그림이나 글씨를 새겨 그 맛과 개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서울 그랜드하얏트서울의 미식골목 '소월로322'에서 주류를 총괄하는 박현석(31) 매니저의 말. 그가 말한 것은 최근 외식업계 대세가 된 '내추럴 와인(natural wine)'. 화학비료나 살충제·제초제를 쓰지 않고 수확한 포도로 즙을 짜고 이산화황 같은 방부제·인공 효모나 설탕도 첨가하지 않은 와인. 이들 중 상당수는 오크통에 넣고 숙성을 하는 과정도 건너뛴다. 긴 숙성 과정을 따로 거치지 않다 보니 과일의 시큼한 산미가 강하고 일부는 촉감이나 향이 거칠지만 그래서 '생동감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일본에선 1990년대 말부터 인기였고, 유럽에선 2010년 말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힙해서' 마신다, 내추럴 와인

회사원 한영진(33)씨는 스스로를 "내추럴 와인에 빠져 몇 달치 월급을 탕진한 사람"이라고 했다. 몇 달 전 서울 한남동 어느 바에서 '오렌지 와인'이라 불리는 내추럴 와인 한 병을 마셔본 게 시작. 청포도로 빚은 술인데도 오렌지 빛깔을 띠었고 맛과 향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중간처럼 느껴졌다. "신선했어요. 제가 기존에 알던 와인과 전혀 다른 느낌? 자연주의·공정무역 같은 최신 트렌드와도 어울렸고요."

서울 회현동에 위치한 '바 피크닉'에서 즐길 수 있는 타파스와 내추럴 와인.

와인 수입 회사 '뱅베' 정구현 매니저에 따르면, 내추럴 와인이 전 세계 와인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 정도다. 수치상으론 미미하지만 뉴욕, 도쿄, 홍콩 같은 대도시의 최신 레스토랑이나 고급 바에선 너 나 할 것 없이 내추럴 와인이 팔린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최고급 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은 요즘 대부분 "내추럴 와인을 취급한다"고 홍보하기 시작했다. 한 잔씩 편하게 걸치는 아담한 바도 여럿 생겼다. 서울 한남동 '빅 라이츠', 이태원동 '슬록', 회현동 '바 피크닉'이 대표적. '빅 라이츠'의 경우는 한 번 와 본 손님과 가야지만 술을 마실 수 있다. 전화번호도 없고 일반 예약도 받지 않는다. 신세계 L&B 김설아 마케팅 파트장은 "소수만의 문화라 오히려 더 빠르게 유행되는 추세"라고 했다. "한때 수제 맥주가 패션과 트렌드에 민감한 힙스터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잖아요? 내추럴 와인도 비슷해요. 뻔한 와인이 지루하다 느끼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가 확산되는 거죠."

◇허세다 vs 아니다

이산화황·인공 효모를 넣지 않다 보니 내추럴 와인은 같은 상표여도 병마다 맛이 다르다. 젊은 층은 그래서 열광한다.

'바 피크닉'의 프랑스인 소믈리에 클레멍 토마쌍씨는 "기존 기성 와인이 어느 지역, 어떤 품종, 몇 년도 제품인가를 따져가며 등급을 매겼다면 내추럴 와인 세계에선 이런 지식이 통하질 않을 때가 더 많다"고 했다.

반대편에선 "그래도 상품인데 품질이 일정하지 않은 것을 개성이라고 주장하면 다냐" 반박한다. 김설아 파트장은 "내추럴 와인을 두고 허세라고 생각하는 이도 많다. 박음질이 안 된 옷을 유행이라고 우기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니냐는 고객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