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쇼기의 실종 소식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어떤 스릴러물이 이보다 더 긴박할 수 있을까. 카쇼기는 사우디 왕실에 대한 날 선 비판으로 인해 고국으로부터 배척당했다. 그러다가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사라졌다. 공관 밖에서 그의 약혼녀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카쇼기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터키 당국은 사우디 정부의 타살 가능성을 제기했다. 물증이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치외법권인 외국 공관 안에서 벌어진 살인 현장의 녹음 파일을 확보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이다. 감청과 도촬(盜撮)이 있었거나, 아니면 총영사관 내부의 첩자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피해자가 차고 있던 애플 워치를 통해 당시 상황이 녹음돼 약혼녀에게 맡겨놓았던 휴대전화와 클라우드로 전송되었다는 터키의 설명은 SF 영화 같다.

실종된 카쇼기는 이른바 자발적 망명(self-exile) 인사다. 사우디의 고루한 이슬람 통치 이념인 와하비즘에 대한 비판을 이전부터 서슴지 않았다. 최근에는 미국에 체류하며 현 왕실을 강도 높게 비난해왔다. 특히 예멘 전쟁, 카타르 단교, 무모한 개발 계획 등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무능과 폭압적 행태를 집중 부각했다.

카쇼기는 전(前) 주미 대사인 투르키 빈파이살 왕자 및 세계적 거부 왈리드 빈탈랄 왕자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투르키 왕자는 수다이리파(派)인 현 국왕과 긴장 관계에 있는 파이살계(系)의 핵심 인사로, 비밀정보기관(무카바라트) 책임자를 20년 넘게 맡았다. 그래서 여전히 적지 않은 왕실 내부 정보를 갖고 있다. 왈리드 왕자는 왕세자에게 부패세력으로 몰려 작년 말 치도곤을 당하고 적잖은 재산을 강제로 헌납한 바 있다. 승계 문제에 예민한 왕세자로서는 왕실 내 정보와 돈을 든 견제 세력과 가까워 보이는 카쇼기가 워싱턴포스트 등 해외 유력 언론에 계속 자신을 비판하니 눈엣가시 같았을 것이다.

이쯤 되면 사우디 정부가 카쇼기를 해코지할 만한 동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의문은 남는다. 외국에서 백주(白晝)에 유명 반(反)정부 인사를 납치, 살인한다는 것이 과연 왕세자에게 이익일까? 외국 공관의 동향은 주재국이 예의 주시하기 마련이다. 이런 일이 터지면 외교 문제로 비화해 세간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다. 더욱이 카타르 단교를 둘러싸고 사우디와 터키는 최근 각을 세워오지 않았던가? 예상처럼 터키는 세게 치고 나왔다.

비판 세력을 단호히 제거함으로써 왕국 내 공포정치를 실현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국제사회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왕세자가 명운을 걸고 있는 왕국의 개혁과 개방, 현대화에 대한 외부의 지지를 스스로 걷어차는 꼴이다. 이달 23일부터 사흘간 미국 재무장관과 IMF(국제통화기금) 총재를 비롯한 세계적 유명 인사들을 대거 초청, 사우디 미래 비전 관련 대규모 투자 콘퍼런스를 앞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결국 납치 살해가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왕세자가 직접 명령한 일이든지, 왕세자 측근이 자발적으로 벌인 일이든지, 아니면 왕세자를 흔들려는 제3의 세력에 의한 사건 즉 일종의 음모론이든지 셋 중 하나일 가능성이다. 왕세자가 지시했다면 최악의 폭군인 셈이고, 몰랐다면 무능함을 방증한다. 그리고 음모론은 무수한 시나리오를 만들어낸다. 아직 사건의 경위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기에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다.

다만 미래 권력을 꿈꾸며 사우디의 비전을 선포하던 왕세자는 큰 타격을 입었다. 인권 문제를 둘러싸고 캐나다 유학생 전원을 귀국 조치시키는 무리수를 둔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은 그의 리더십에 의문을 더하고 있다. 음모론과 온갖 설이 끊이지 않는 것도 결국 그의 탓이다. 계몽 군주는 음습한 곳에서 탄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