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부터 그리스에 관심을 가졌어요. 우주의 근원에 대한 생각을 희랍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냈기 때문이죠. 게다가 인간이 평등하다는 생각도 그들이 가장 먼저 했어요. 개인의 위대함을 존중한 것도 제 마음을 끌었지요. 학생 때는 '개인'을 중하게 생각하잖아요?(웃음)"

강인숙(85) 영인문학관장이 그리스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건국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할 때 헬레니즘 관련 교양 강의를 하면서 그리스에 대한 관심이 더 깊어졌고, 언젠가는 그리스에 대한 책을 쓰겠노라 다짐했다고 했다.

1996년과 2003년 두 번 그리스 여행을 다녀왔지만 지적 갈증을 채우기엔 미흡했다. 도움을 준 건 남편이다. 그가 '이 선생'이라 부르는 남편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2001년부터 꾸려온 '영인문학관'은 '이어령'의 '령(寧)'과 '강인숙'의 '인(仁)'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 '이 선생'이 마침 3년 전부터 '마그나 그레치아(시칠리아와 나폴리 남쪽 해안에 있던 그리스 식민지)'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남편의 시칠리아 얘기를 들으면서 여행을 계획했다. 최근 출간한 '시칠리아에서 본 그리스'는 지난해 5월 시칠리아를 여행한 뒤 썼다.

강인숙 관장은 “그리스 애호가로서 본 그리스 문명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이는 세계 속의 한국 찾기이자 나를 찾는 작업이었다”고 했다.

84세 고령에 먼 여행을 떠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여행을 목전에 두고 요통이 도졌다. 집에 혼자 있어야 할 남편의 건강검진 결과도 좋지 않았다. 여행을 포기하려 하자 남편이 펄쩍 뛰며 등을 떠밀었다. 결국 스테로이드 주사를 두 번 맞고 길을 나섰다.

시칠리아는 기원전 8세기부터 500년간 그리스였다. 강 관장은 "시칠리아는 식민지가 아니라 본국보다 더 크고 풍요로운 그리스였다. 그리스인들은 시칠리아에 총독도 보내지 않았고 속주세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도시마다 신전과 극장을 지었죠. 문화만 가지고 시칠리아에 이사 가서 산 겁니다. 로마 지배 시기에도 시칠리아엔 그리스 문화가 번성했어요."

이탈리아 땅 시칠리아엔 극장과 신전 같은 유적이 그리스보다 더 많이 남아 있다. "섬이라서 전쟁에 덜 휩쓸렸던 것 같아요. 다만 시칠리아의 신전은 황토색입니다. 현지의 돌로 지었기 때문이죠. 옛 그리스 사람들은 그 신전에 흰 대리석 가루를 칠했답니다."

그리스를 보러 떠난 여행이지만 거기서 발견한 건 우리 문화였다. 강 관장은 "시칠리아의 문명 수용 양식을 보면서 반도형 문화 수용 패턴을 가진 우리 문명의 양식을 더듬어봤다"면서 "우리 건축이 그리스 양식과 통하는 데가 있고, 절도와 중용을 중시하는 유교적 세계도 그리스와 닮았더라"고 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많은 책을 읽었어요. 시인 김남조 선생이 '아흔이 돼도 하루에 하나 배우지 않는 게 없다'고 하시더니, 저 역시 매일매일 조금씩 성숙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