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1월 4일 저녁, 파리에서 두 부랑자가 오도 가도 못한 채 두서없는 대화를 나누며 티격태격하는 연극이 공연되었다. 부랑자들의 투덜대는 말, 음란한 말, 시답지 않은 소동이 전부였다. 그저 누군가를 기다린다고 하는데, 그는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로 단박에 유명해진 사뮈엘 베케트(1906 ~1989)는 아일랜드의 더블린 출신의 작가이다.

베케트는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아일랜드 고향에서 헤엄을 치고 책을 읽으며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7년 가을, 영어 강사 자리를 얻어 파리에 왔다. 몽파르나스나 생제르맹 데 프레의 카페를 드나들며 제임스 조이스나 조각가 자코메티 같은 예술가를 만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나고 파리가 나치에 점령당했을 때, 나치에 저항하는 첩보 활동을 하던 베케트는 파리의 다락과 지하실, 북부 프로방스의 시골 은신처에서 2년 반을 숨어 지내며 목숨을 부지했다.

어느 날 베케트가 오를레앙 대로를 걷고 있을 때, 낯선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이 남자가 이유 없이 시비를 걸다가 베케트를 칼로 찔렀다. 칼은 심장을 비켜 갔다. 칼을 휘두른 자는 몽파르나스 사창가의 포주 프뤼당이었다. 베케트는 재판정에서 그에게 왜 자신을 찔렀느냐고 물었다. "나는 모르오, 선생."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가해자의 답변은 뻔뻔하고 황당했다. 베케트는 이 사건으로 새삼 인생의 무작위성과 부조리함을 깨달았다.

베케트는 '거짓말과 전설'에 이끌리고 "행복해지는 재주가 없다"라고 투덜대면서도 영어와 프랑스어로 장편소설과 라디오 방송극을 꾸준히 써내면서, 베를린·파리·런던에서 자신의 희곡을 무대에 올렸다. 블랙유머로 형이상학적 불안과 부조리를 파헤친 그 작품들로 베케트는 1969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89년 12월 22일, 베케트는 파리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