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마라톤' 같은 기름화재(B형 화재)
소방관 접근 어렵고, 특수화학차 있어야 진압
폭발 동반 D형(금속화재) 연쇄폭발 E형(가스화재)도 위험

"기름에 불이 붙은 화재를 소방에서는 ‘B형 화재’로 분류합니다. 소방·방재관계자들은 B형 화재를 두고 '장거리 마라톤'이라고 합니다. 한번 발생하면 장시간 사투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서울소방본부 김창섭 가스위험물안전팀장)

지난 7일 경기도 고양 저유소 불은 전형적인 ‘B형 화재’였다. 680여명의 소방인력, 151대의 장비가 동원됐지만 이 불을 잡는데는 17시간이 걸렸다. 화재 초기에는 "끄는 데 한달 걸린다" "일주일 걸린다" 하는 예상이 나왔지만, 탱크 속 기름을 대거 빼냄으로써 그나마 진압이 빨라졌다.

7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고양시 대한송유관공사의 지하 탱크에서 불이 나 소방 당국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B형 화재는 대체로 불길이 거대하다. 고양 저유소에서 사고가 난 기름탱크 하나의 용량은 490만ℓ로 화재가 난 탱크에는 440만ℓ의 휘발유가 남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주유소 100곳 이상을 채울 수 있는 규모다.

소방당국은 260만ℓ의 휘발유를 다른 탱크로 빼내는데 성공했지만, 180만ℓ의 남은 휘발유는 거대한 불기둥을 형성하며 17시간을 탔다. 서울소방본부 김창섭 가스위험물안전팀장은 "B형 화재의 불길은 통상적으로 덩치가 커서 소방서 한 곳 역량으로는 언 발에 오줌누기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고양 저유소 화재는 화재가 발생한 저유기 내부 배관을 통해 물을 주입한 뒤 기름을 위로 띄워 태우면서 소화폼을 살포하는 방식으로 불길을 잡았다. 다른 곳으로 기름을 빼낼 수가 없는 '단독 유류 저장탱크'의 경우라면 저장된 기름이 다 타고 없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B형 화재 진압이 어려운 이유
일선 소방관들은 공통적으로 "B형 화재 진압은 특히 어렵다"고 한다.
우선 휘발유가 타면서 뿜어내는 열기로 접근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고양 저유소 화재현장에서도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 100m까지만 접근 가능했다. 경기 고양소방서 현장대응단 관계자는 "이번 고양 저유소 화재 현장의 경우, 100m 떨어진 곳에서도 열기가 뜨거워 소방차 앞 유리창이 깨질 정도였다"며 "진압 작업 중인 소방관들에게도 물을 뿌려 열기를 식혀줘야만 했다"고 말했다.

B형 화재는 소방에 가장 기초적인 ‘살수(撒水)’를 할 수 없다. 밀양소방서 지휘1팀 김태경 소방관은 "B형 화재에 물을 뿌리면, 도리어 물이 끓어오르면서 폭발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불이 붙은 기름이 사방으로 튀기 때문에 화재가 옮겨 붙을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기름 불’에는 특수 소화제가 사용된다. 불길의 ‘먹이’인 ‘산소를 차단하는 ‘유류화재용 소화액’이 대표적이다. 많은 양의 거품을 발생, 산소를 차단함으로써 불을 ‘질식’시키는 방식이다.

고양소방서는 보유한 유류화재용 소화액을 모두 썼는데도 저유소 화재를 잡는데 역부족이었다. 결국 전북 익산소방서, 청주동부소방서에서 약품을 조달해오는데 시간을 썼다. 약품과 물을 섞어 살수하는 특수화학차도 이들 소방서에서 지원받았다.

7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송유관공사 저유소에서 발생한 화재로 검은 연기가 잠실 롯데월드타워까지 퍼져 있다. 사진은 오후 5시45분쯤 수리산 수암봉 정상에서 본 모습.

◇화재 양상 따라 A~E형으로 구분
A형→ 물, B형→특수거품, C형→특수소화기, D형→모래, E형→산소차단
소방전문가들은 화재 양상에 따라 모두 다섯 가지로 화재 유형을 구분한다. A형 화재는 가장 일반적인 유형으로, 목재, 종이, 고무, 플라스틱 등 타고 나면 재가 남는 가연물들에 의한 화재다. 한마디로 물로 끌 수 있는 불이다. 물을 분사해 발화점 이하로 떨어뜨려 진압한다.

C형 화재는 전기로 인해 발생한 경우다. 전기스파크, 과부하 등으로 전기에너지가 불로 전이되는 경우다. 감전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기름 화재(B형)과 마찬가지로 물로 진화하기 어렵다. C형 화재에는 특수소화기 등이 활용된다. 소방 관계자는 "C형 화재는 발화점을 식별하기 힘들기 때문에 원인규명이 어렵고 화재의 양상도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화학물질을 많이 쓰는 공장 등에서 발생하는 D형 화재는 폭발의 위험이 큰 ‘금속화재’다. 철분, 마그네슘, 칼륨, 나트륨, 지르코늄 등의 금속가루가 많은 공간에 물을 뿌리면 화학 반응으로 수소가 생겨 수소폭발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볼 수없는 화재로, 주로 화학품을 다루는 공장에서 발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마그네슘 가공공장 화재, 반도체 공장 등에서 D형 화재가 발생했다.

금속화재에는 마른 모래를 뿌려서 덮어버리는 진화방식이 효과적이다. 실제로 소방서에서는 공장에서 금속성분으로 인한 폭발 화재가 일어날 경우, 굴착기를 동원하여 모래를 뿌려 덮어버린다. 건성분말의 화학식 화재진압도 사용된다.

기름 화재와 함께 대형 화재로 번질 우려가 큰 것이 E형 화재(가스 화재)다. 가스관 매설방식이나, 가스 누출 경로에 따라 연쇄 폭발 위험성도 있다. 공기보다 밀도가 무거운 LPG의 경우 가스가 바닥에 깔린다. LPG 유출 경우라면 창문을 열고 바닥에 깔린 가스를 환기시켜야 한다. E형 화재도 산소 공급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진압해야 하기 때문에 분말을 뿌리거나 특수소화기를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