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일 제주도에서 열리는 국제 관함식에 일본 자위대 소속 함선이 ‘욱일기’를 달고 온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2007년 제주도 인근 해상에서 열린 한·일 해군 공동 훈련에 자위대 함선이 욱일기(흰색 원)를 게양한 모습(왼쪽 사진). 이번엔 일부 시민단체가 욱일기를 단 일본 자위대 함선이 제주도에 입항하는 걸 반대하는 퍼포먼스(오른쪽 사진)를 펼치는 등 반대 여론이 높아지면서 외교 문제로 비화할 조짐이다.

"전범기를 단 일본 군함이 제주항에 입항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오는 10일부터 제주 민군 복합 관광 미항(해군 기지)에서 열리는 '2018 대한민국 해군 관함식'에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함선이 이른바 '욱일(旭日)기'라는 해상자위대 깃발을 달고 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 반발 여론이 커지고 있다. 한국과 중국 등 일본에 침략당한 국가에 욱일기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 단체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공개적으로 일본을 비판하며 욱일기를 내리고 입항하고 요구했다. 이 문제가 화제가 되자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욱일기를 게양한 선박이 국내 영해에 진입하는 걸 막는 내용 등을 담은 욱일기 금지 법안 3건을 대표 발의했다. 관함식 주최자인 해군도 거들고 나섰다. 관함식에 참가하는 14국에 "참가 함선에 자국 국기와 태극기를 게양해 달라"고 요청하며 일본에도 "우리 국민 정서를 감안해 달라"는 취지의 입장을 전달했다. 결국 일본은 5일 관함식에 불참하겠다고 우리 해군에 통보했다. 논란이 커지자 소셜미디어에서는 '욱일기가 전범기가 아닌데 유독 한국만 반발이 지나치다'는 반론까지 나오고 있다.

①전범기는 무엇인가

전범기는 통칭 침략 전쟁을 일으킨 범죄자를 뜻하는 전범(戰犯)과 깃발 기(旗) 자를 합친 말이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전범기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식 등재된 단어는 아니다. 최근 10년 사이 국내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로 보인다. 또한 법적·학술적으로 통용되는 개념도 아니다. 국회도서관 소장 자료 중에 전범기를 언급한 국내 학술 논문은 0건이다. 전범기란 단어가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2012년경. 그 전에 국내는 물론 전범 국가였던 일본 언론에서도 전범기란 말을 쓴 사례가 없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전범에 사물인 깃발을 의미하는 단어를 붙인 것이 어법상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깃발을 특정한 건 아니지만, 전범들이 쓴 상징물을 법으로 금지한 대표적 사례가 독일이다. 2차 세계대전 주범인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갈고리 모양 십자가)를 깃발이나 옷 등에 쓰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일본은 욱일기 사용에 대한 처벌은 따로 하지 않고 있다.

②일본 자위대 함선은 왜 욱일기를 게양하나

욱일기는 일본 자위대의 상징이다. 세계 각국 군대는 자국기와 별도로 군대를 대표하는 상징이 들어간 군기(軍旗)를 내세운다. 1870년 메이지유신 시기에 일본 육군이 창설되면서 욱일기를 군기로 채택한 것이 지금까지 내려왔다. 일각에선 이 깃발이 '욱일승천(昇天)기'라며 일본 제국주의를 뜻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전쟁 당시나 이후에도 일본에서 그렇게 불렀다는 증거는 없다. 욱일기의 원형은 에도 막부 시대부터 쓰인 이른바 '아사히(朝日)' 문양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는 붉은 해에서 뻗어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것으로 출산·풍작·풍어 등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욱일'을 일본어로 훈독(訓讀)하면 '아사히'다. 아사히 문양은 군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널리 쓴다. 일본의 대표적 진보 언론인 아사히신문사의 로고도 이 문양을 응용한 것이다.

군함의 군기 게양은 국제법에 따른 의무 조치다. UN 해양법은 군함이 항해하는 동안 국적을 식별할 수 있는 깃발을 게양할 것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 해군 역시 그에 따라 해군기를 게양한다. 관함식같이 각국 해군 함정이 모이는 행사에서도 군기 게양은 관행이었다. 앞서 1998년과 2008년 한국서 열린 관함식에 일본 해상자위대 함선은 욱일기를 달고 참석했다. 다만 중국은 2014년 칭다오에서 관함식을 주최하면서 일본을 아예 초청하지 않았다.

③욱일기, 왜 지금 문제가 되는가

욱일기 이미지는 군기로 쓰기 전부터 민간에서 길조로 여기고 써온 문양이다. 지금도 일본에선 제국주의 찬양과 전혀 무관한 맥락에서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주변국에선 욱일기뿐 아니라 그를 차용한 이미지까지 모두 전범기나 일본 제국주의와 연관지어 인식한다. 일본군이 이 깃발을 앞세우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전쟁 중 잔혹 행위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히틀러와 나치 세력 대부분이 민간 정치인이었지만, 일본은 도조 히데키 등 주요 전범이 대개 군 장성 출신이거나 현역 군인이었다. 욱일기는 1945년 일본이 패전한 후 군이 해산되면서 사라졌다. 그러다 1954년 미·일 상호방위조약, 즉 미·일 동맹이 체결되면서 자위대가 창설될 때 욱일기도 함께 부활했다. 당시 기록을 검토하면 미국이 욱일기를 자위대 상징으로 쓰는 걸 반대했던 흔적은 없다. 오히려 주일(駐日) 미 육군 항공 대대 등 일부 주일 미군 부대는 욱일기 이미지를 차용한 부대 마크를 쓰고 있다.

하지만 승전국이었던 미국과 달리 한국과 중국 등 일본에 침략당한 피해 국가들이 욱일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다. 독일과 달리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난징 대학살 등 전쟁 당시 저질렀던 각종 범죄에 대해 공식 인정하거나 사과한 일이 거의 없다. 거기다 2000년대 이후 일본의 우경화 경향이 뚜렷해지는 흐름과 맞물려 한국에서 욱일기에 대한 반감이 점점 증폭되는 실정이다. 소녀시대나 빅뱅 등 한국 아이돌 가수들이 욱일기를 연상케 하는 문양이 그려진 옷을 입거나 소셜미디어에 게시했다가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공개 사과하는 일이 잦아지는 게 대표적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