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독자 박병석씨의 제보를 토대로 취재해 작성한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독자들의 제보·의견을 적극 기사화하겠습니다.〈조선일보 독자서비스센터: 02-724-5555〉

개천절이자 공휴일인 3일 오전 5시 30분 경기도 시흥시 계수동의 한 공사 현장 앞에 민주노총 건설노조 경기 중서부지부 노조원 80여 명이 모였다. 해 뜨기 전이라 주위는 캄캄했다. '노동 해방'이라고 적힌 방송차가 도착해 민중가요를 틀면서 시위가 시작됐다.

집회 장소 반경 300m에는 1750가구가 산다. 집회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집회 때문에 주변 아파트에서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아파트들 전부 누가 지었습니까? 우리가 지은 것 아닙니까!"

노조는 지난달 19일부터 이날까지 총 6차례 집회를 열었다. 공사장에 조합원을 채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새벽 집회가 계속되자 1주일간 경찰에 접수된 민원만 40건이 넘는다. 이날 경찰이 측정한 집회 소음은 시끄러운 지하철 수준인 72dB(데시벨)을 기록했다. 법정 소음 기준(60dB)도 초과했다. 현장에 나온 경찰은 "주민 고통도 이해하지만 새벽 집회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소음 단속도 쉽지 않다. 주최 측이 "소리를 줄이라"는 경찰 지시를 수차례 거부할 경우 경찰서장은 확성기를 뺏고 임시 보관할 수 있는 게 전부다. 집회를 해산할 수도 없다. 한 경찰관은 "소음 기준치를 넘겨 주최 측에 경고하면 잠시 소리를 줄였다가 소음 측정 안 할 때 다시 소리를 키운다"고 했다. 1시간쯤 진행된 집회는 오전 6시 30분 해가 뜨자 끝났다.

사람들 다 자는 새벽부터 시위 휴일인 3일 새벽 경기 시흥시의 한 공사 현장 앞에서 민노총 건설노조원들이 집회를 하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건설노조원들은 지난달 19일부터 이날까지 총 6차례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서 경찰이 측정한 소음은 72dB로 법정 소음 기준인 60dB을 초과했다.

해 뜨기 전 열리는 새벽 집회로 수도권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새벽에 출근하는 건설 노조원들이 여는 경우가 많다. 본지가 대형 공사가 벌어지는 서울·경기 지역 경찰서 15곳에 문의한 결과, 14곳에서 "현재 일출(日出) 전 집회가 열리고 있거나 지난달까지 열렸다"고 했다.

2014년 헌법재판소는 일몰부터 일출 전까지 야간 시위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0조에 대해 한정(限定)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일몰부터 자정까지는 집회를 허용하라"는 취지다. 경찰청 관계자는 "자정부터 일출 전 열리는 집회 금지는 유효하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집시법 조문이 개정되지 않아 이후 24시간 시위가 허용됐다"고 했다. 최근에는 건설 경기가 식고, 건설 노조들이 일감 따내기 위해 집회를 '무기'로 삼으면서 새벽 집회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28일 오전 5시 30분 서울 마포구 염리동 주택가에도 민중가요가 울려 퍼졌다. 민주연합 건설산업노조 조합원 20여 명은 "단결" "투쟁"을 외쳤다. 주민 정덕근(67)씨는 "너무 시끄러워 경찰에 신고했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집회가 시작된 후 2주째 아침잠을 제대로 못 잤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주민도 있었다.

지난 6월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아파트 단지에서 10m 떨어진 김포시 걸포동 공사 현장에서 3주간 새벽 4시부터 1시간씩 집회를 열었다. 4월에는 경기도 시흥시 배곧신도시 학교 신축 현장에서도 오전 5시부터 시위했다. 소음이 100dB에 달했다고 한다. 주민 300여 명은 "집회를 막아달라"는 청원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참지 못한 주민이 노조원들과 몸싸움하기도 했다. 건설사 관계자는 "새벽 집회는 건설 노조가 건설사를 압박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잠을 설친 주민들이 경찰이나 건설사에 민원을 넣기 때문에 건설사가 조합원을 채용하라는 노조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