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일(현지 시각) 워싱턴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멕시코-캐나다 간 무역 협정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우린 미국이야, 개자식아(We're America, Bitch)."

시사잡지 더 애틀랜틱의 편집장인 제프리 골드버그가 백악관 고위 관계자에게 '트럼프 독트린(Trump Doctrine)'을 설명해달라고 하자, 백악관 고위 관계자가 이 한마디로 답했다고 한다. 논리와 질서가 아닌 힘과 근육으로 몰아붙이고 "싫으면 어찌할 건데?"라고 하는 것이 '트럼프주의'란 것이다.

이 폭력적 논리가 위력을 발휘하며 세계 각국이 트럼프가 요구하는 새 질서에 어쩔 수 없이 각자도생식으로 순응해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정권 출범 2년여 만에 세계 질서가 서서히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을 대체해 지난달 30일 타결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 USMCA)' 협상 과정은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상 하나의 국가처럼 움직였던 동맹국 캐나다에도 트럼프주의는 가차없었다. 트럼프는 지난해 취임하자마자 "나프타는 나쁜 합의다. 미국에 유리하게 재협상 안 되면 탈퇴하겠다"면서 판을 흔들었다. 이어 국경 보안 문제 등으로 수세에 몰린 멕시코와 먼저 개정 합의를 한 뒤, 이를 고리로 캐나다를 압박했다. 두 손을 든 캐나다는 울분을 삼켰다. 나프타 개정 협상 체결 직후 페린 비티 캐나다 상공회의소 의장은 "캐나다는 결코 두 번 다시 단일 무역 파트너에게 과도하게 의존해선 안 된다"고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지난 5월 G7 정상회담에서 "우울하다"면서 "유럽은 더 이상 미국과의 동맹에 의존할 수 없다. 우리 운명은 우리 손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가 "유럽이 경제·안보 면에서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고 물고 늘어진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이 같은 '깨달음의 탄식'은 각국에서 연쇄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트럼프발 무역 전쟁의 가장 큰 타깃인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점점 강화되는 일방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중국을 자력갱생의 길로 내몰고 있다"며 "중국인의 밥그릇을 우리 손안에 확실하게 쥐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더 애틀랜틱은 "국제사회가 트럼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내에선 올해 들어 트럼프의 폭력·충동적 성향에 대해 미국인들이 분노와 좌절의 단계를 거쳐 수용하거나, 심지어 따라 하는 '트럼프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이란 말이 유행했다. 이 국내 심리적 현상이 국제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애틀랜틱은 캐나다·독일처럼 '저항하다가 결국 순응하는' 그룹과, 처음부터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실리를 추구하는 일본·한국 같은 그룹으로 나눠 분류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한 미국을 다시 가입시키려 애쓰다, 결국 양자 무역협상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본으로선 기존 TPP보다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지만, 아베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특히 애틀랜틱은 '자아도취형 트럼프의 프라이드를 자극해 선심을 이끌어내는 지도자'로 문재인 대통령을 꼽았다. 문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북·미 정상회담은 트럼프의 위대한 결단"이란 말로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온건하게 유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워싱턴포스트도 "문재인은 자신의 목적에 맞게 트럼프를 다루는 기술자"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세계 경제·군사력에서 패권을 잡았지만, 이전의 제국과는 달리 자유무역·민주주의·인권이란 핵심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트럼프처럼 '돈'과 '힘'을 전면에 내세워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려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더구나 동맹을 압박하면서 북한 김정은이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적국의 독재자들에겐 "사랑에 빠졌다" "신뢰한다"며 호감을 표시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최고 질서 파괴자(Disruptor-in-Chief)'라고 부르고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은 "미국이 세계를 압도한 것은 단순히 총과 돈으로서가 아니라, 자유와 인권 등의 더 큰 가치를 옹호했기 때문"이라면서 "미국을 진정 위대하게 만들었던 가치를 트럼프가 버렸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