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암스테르담 정육점의 위엄을 보라. 테이블 위에는 털이 그대로 남아 있는 소머리가 눈을 부릅뜨고 있고, 갓 만든 버터와 치즈가 함께 놓여 있다. 소시지가 흘러넘치듯 널려있고 돼지 머리와 내장, 족발, 햄을 만들려고 두둑하게 썰어 둔 뒷다리와 가죽을 발라낸 통갈비에 막 잡은 닭과 생선도 보인다.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했던 화가 피터르 아르트센(Pieter Aertsen·1508~1575)은 이처럼 어마어마한 식재료가 눈이 어지럽도록 코앞에 쌓여 있는 그림을 주로 그렸다.

피터르 아르트센, 자선을 베푸는 성가족과 푸줏간, 1551년, 나무판에 유채, 115.6×168.9cm, 롤리 노스캐롤라이나 미술관 소장.

하지만 이토록 풍성한 고기 더미에 눈을 빼앗기면 그림의 진짜 주제를 놓치게 된다. 화면 중앙, 먼 거리의 풍경에는 걸인들이 줄을 서 있고 그 가운데 성(聖)가족이 있다. 성요셉은 지금 유대왕 헤롯의 영아 학살을 피해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나귀에 태우고 이집트로 피신하는 중이다. 그 와중에 성모 마리아는 한 손에 갓난아기를 안고도 얼마 남지 않은 빵을 떼어 구걸하는 젊은이에게 나눠주고 있다.

한편, 화면의 오른쪽에서 붉은 겉옷을 입고 포도주를 준비하는 이는 정육점 주인이다. 바닥에 굴 껍데기가 쌓인 것으로 보아 안쪽의 술집에서 파티가 흐드러진 모양이다. 요컨대 이 그림은 정물화가 아니라 종교화다. 진정한 풍요는 고기가 아니라 어려운 이들을 저버리지 않는 마음에서 온다는 것이다. 엄청난 고기의 틈바구니에 식탐과 과욕으로 몸을 살찌울 것이 아니라 겸허한 태도와 나누는 마음으로 영혼을 살찌우라는 교훈이 담겨있다.

명절을 지내고 나면 늘 음식이 남는다. 다음에는 반드시 몸이 아니라 영혼을 살찌우겠노라 다짐해보지만 잘될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조상님께서도 고기보다는 마음을 반기실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