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부장이 27일 유엔 안보리 장관급회의에서 "대북 압박이 목표는 아니라는 게 중국의 확고한 입장이다. 적절한 시점에 북한의 조치에 따른 제재 수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러시아 외무장관은 더 나아가 "제재 강화는 북한의 인도적 위기를 낳을 뿐"이라며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은 회원국의 주권을 훼손하는 조치"라고 했다. 중·러는 지난주 안보리 긴급회의에서도 "제재에만 의존하면 재앙적인 결과 외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약속이나 한 듯 '선(先) 대북 제재 완화'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동안 마지못해 대북 제재에 동참해온 중·러는 남북 정상회담 이후 다시 미·북 대화 국면이 열린 것을 명분 삼아 북한의 숨통을 틔워주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미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다. 이미 중·러가 불법 선박 환적 방식으로 북한에 안보리 결의가 정한 상한선을 넘겨 정제유를 공급하고 있다는 보고서도 나와 있다.

중·러 주장처럼 제재·압박만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군사 조치 같은 극단적 방법을 피해 지금의 외교적 돌파구를 연 것은 대북 제재가 강한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는 중·러도 부인하지 못한다. 김정은은 전례 없는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에 떠밀려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나왔다.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실질적 조치로 연결시켜줄 지렛대도 대북 제재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방미 중 "제재를 완화하더라도 북한이 속이면 다시 강화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다. 수년간 어렵게 쌓아올린 국제사회의 제재 둑은 한번 무너지면 복원을 기약할 수 없다. 공식적으로 제재가 완화될 경우 중·러가 어떻게 나올지는 뻔하다. 대북 제재가 유명무실해지면 북이 핵을 포기할 이유도 사라진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안보리 회의에서 "이제 새 시대의 새벽이 밝았다"면서도 "무엇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북한의 최종적인 비핵화가 달성되고 완전히 검증될 때까지 제재 결의안을 완전하게 이행하는 것이 엄숙한 책임"이라고 했다. 정확한 말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비핵화 때까지 대북 제재는 유지돼야 한다'고 쐐기를 박으면 북·중·러 모두에게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