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의원 측 "해킹 같은 불법성 행위 없었다"
법조계 "'툴' 안썼으면 해킹 아니라고 봐야"
개인정보도, 공무상 비밀도 아니면 처벌 어려워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 총회에서 예산정보 무단 열람·유출 의혹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디지털 예산회계 시스템'의 일부인 '재정분석시스템'을 통해 대통령비서실 등의 예산집행 내역 등 기밀을 입수했다는 의혹을 놓고 파장이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7일 심 의원실 보좌관 3명을 고발했고, 검찰은 21일 심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한국당은 "야당 탄압"이라며 대정부 투쟁을 선포했고, 여당은 "엄연한 불법 열람·취득"이라고 맞서고 있다. 심 의원은 27일 오전 청와대의 ‘부적절한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 일부를 공개했고, 김용진 기획재정부 2차관은 공식 브리핑에서 "추가 고발하겠다"고 했다.

①해킹 vs. 시스템 오류
이번 사건의 핵심은 '자료의 입수 경위'다. 심 의원 측은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에 접속해 '뒤로가기' 버튼을 연달아 누르자 갑자기 나타난 정보를 열람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의도'가 아니라 시스템 오류에 의해 '접속이 됐다'는 것이다. 심 의원 측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해당 자료 입수 과정을 시연해 보이며 해킹과 같은 불법성은 없었다고 항변했다.

반면 기재부는 심 의원실 보좌관들이 정상적인 방법에 따라 접속하긴 했지만, 로그인 후 비인가 영역에 비정상적 방식을 사용해 접근, 비인가 자료를 불법적으로 열람·취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의원실이 갖고 있는 ID의 권한으로는 열람하거나 내려받을 수 없는 자료가 유출됐다는 것이다.

②무슨 법을 적용해야 할까
법조계에서는 심 의원과 의원실 관계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법 규정이 마땅치 않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보좌관들의 행위가 '해킹'인지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첨단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는 "해킹이라고 보기에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해킹은 툴을 이용해서 고의로 보안 시스템을 허물고 들어가는 것인데, 심 의원 측은 내부 시스템에 정당하게 접속했다. 다만 심 의원측은 비인가 정보에 우연하게 접근하게 됐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지가 남아있다"고 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심 의원은 우연히 별다른 위법행위 없이 정보를 취득했고 그 목적은 예산남용 실태의 파악이었다"며 "비밀·프라이버시 보호에 있어 가장 엄중한 법이 통신비밀보호법인 만큼 (적용되더라도) 죄가 없다고 봐야한다 "고 주장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물론 다른 법조항을 적용하더라도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김용진(가운데) 기획재정부 2차관이 27일 오전 정부 세종청사에서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예산기밀 열람·유출 의혹과 관련해 추가로 고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③공익 위한 의정활동 맞나
심 의원 보좌관들의 행위가 정당한 의정활동인지도 쟁점이다. 심 의원 측은 "국민과 국회가 알아야 할 업무추진비 내역"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이날 심 의원 측은 "청와대 직원들이 원칙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심야와 주말에 2072건(2억4594만원)을 업무추진비 카드로 결제했다. 사용업종이 누락된 결제 건도 있고, 기타 부적절한 내역도 있다"면서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대통령비서실은 국정운영 업무의 특성상 365일 24시간 다수의 직원들이 긴급 현안 및 재난상황 관리 등을 위해 관련 업무를 긴박하게 추진한다"며 "외교·안보·통상 등의 업무는 심야 긴급상황과 국제시차 등으로 통상의 근무시간대를 벗어난 업무추진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심 의원이 정보를 취득하고 공개한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목적이라면 처벌 자체가 어렵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심 의원 측 행위의) 법적 판단 자체가 상당히 오래 걸릴 것"이라며 "국회의원이 행정기관의 예산 남용을 감시하는 것은 공익에 부합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공익에 부합한다면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는 취지다.

④개인정보·공무상 비밀일까
국가 예산의 집행과 관련된 정보이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법도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도 있다. 또 공무상비밀누설죄가 성립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심 의원 측이 입수한 정보 자체가 개인정보도, 비밀도 아니라면 죄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공무상비밀누설죄에서의 '비밀'은 실질적으로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며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은 어차피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비밀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 같은 법조계 해석에 대해 자유한국당 한 관계자는 "고의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처벌도 어려운 행위라면, 검찰이 무리한 압수수색을 한 것은 결국 심 의원 측의 입을 막기 위한 압박용 아니냐"면서 "노골적인 야당 탄압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