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북한 건축 사진 몇 장이 인터넷에서 '신기하고 비현실적'이라는 평을 받으며 화제가 됐다. 이 사진들은 영국 건축비평가 올리버 웨인라이트(33·작은 사진)씨가 2015년 평양에서 8일간 찍었다. 그는 지난 6월 독일에서 북한 건축·인테리어 사진집 '인사이드 노스 코리아(Inside North Korea)'를 냈고, 최근 파주건축문화제 등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최근 경기 파주의 전시장에서 만난 웨인라이트씨는 "평양은 독재자가 도시 건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런던광역시청과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의 사무소 'OMA' 등에서 일했다. 영국왕립예술학교(RCA)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건축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해 2012년부터 가디언지에 기고하고 있다.

평양에 대한 그의 첫인상은 '형형색색의 도시'였다. 그는 "왜 민트색, 분홍색, 연한 푸른색으로 온 도시를 뒤덮었을까 하는 의문이 여행 내내 들었다"고 했다. "두 가지 이유를 떠올렸어요. 첫째로 한복, 고려청자, 대한항공에도 있는 색이라는 점에서 한민족이 원래 선호하는 색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고, 둘째로는 건축 기법과 마감재가 다양하지 못해 그렇게 된 것 아닌가 싶었죠." 그는 또 "경기장 라커룸 등 제대로 사용된 적 없어 보이는 시설들은 흡사 거대한 연극 세트장을 보는 듯했다"고 했다.

그는 "김정은은 인민을 어린애 취급하며, 그들을 어린이화(化)하는 도구로 건축을 쓴다"고 평했다. "평양은 만화적 건물들이 들어선 거대한 놀이동산 같았어요. 또 공상과학 소설에 나올 법한 디자인의 건물이 곳곳에서 지어지고 있었고요. 인민의 집중력과 현실감을 떨어뜨리는 일종의 마취제로 보였습니다." 그는 북한 건축물을 통치 수단으로도 해석했다. "예컨대 동상 양옆에는 거대한 건물이 좌우 대칭으로 서 있습니다. 동상과 건물은 크고 위대하게, 사람은 왜소하게 느끼도록 하는 무대적 장치죠."

①평양 주체사상탑 전망대 북쪽에서 본 풍경. 우측의 아파트들은 핑크색·살구색 등으로 칠해져 있다. 대동강 건너편 은색 건물이 능라도 5·1 경기장이다. ②2012년 지어진 대동강변 아파트. 웨인라이트씨는“현실감을 떨어뜨리는 디자인”이라고 평했다. ③북한 노동당 창건기념탑과 좌우대칭으로 서있는 아파트‘기념탑배경살림집’. 사람을 왜소하게 만드는 건축이다. ④광명성 1호 발사를 기념해 건립된 인공지구위성관.

건물 리모델링도 한창이었다. 가이드들은 "기존의 대리석, 테라조, 나무를 뜯어내고 플라스틱, 유리, 비닐 같은 현대적 소재로 바꿨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이 같은 건축 붐은 철저히 평양에 국한됐다. 웨인라이트씨는 "개성까지 가는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를 딱 두 대 봤다"며 "평양 밖 아파트는 부식돼 무너지기 직전이고 송전탑은 녹슬었다"고 했다.

북한 정권은 '다른 나라 건물을 베끼지 않는다'는 '주체 건축'을 강조한다. 그런데 정작 평양 백두산건축연구원 1층에는 전 세계 유명 건물이 죄다 모형으로 전시돼 있다고 한다. 웨인라이트씨는 "특히 평양 아이스링크장(1981년 건설)은 영국 리버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1966년), 브라질 브라질리아 대성당(1970년)과 매우 비슷하다. 거기서 영감을 얻은 게 확실해 보인다"고 했다.

서울에도 자주 방문해 한식에 익숙하다는 그는 북한 음식에 대해 "맛없는 한식에 불과하다"고 했다. "여행 중 생일을 맞았는데 고급 한식당에서 보신탕을 생일 밥상으로 주더군요. 예의상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어요." 건축가 김호민과 큐레이터 제프리 김이 고른 그의 사진 50여장은 다음 달 4일부터 19일까지 서울시청 로비에서 전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