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만약 국립중앙박물관이 불에 타 우리 역사의 고대 유물들이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최근 브라질에서 벌어졌다.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브라질 국립박물관이 지난 9월 2일 어처구니없는 누전 사고로 불에 타버렸으니 말이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 유물들의 손실도 안타깝지만, 진정한 재앙은 그곳에서만 소장하고 있던 아마존 원주민들의 기록과 유물들이 불에 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글도, 책도 남기지 않은 수많은 원주민 부족. 마지막 남은 유물들과 함께 이젠 그들의 기억마저도 지워진 것이다.

기원전 530년 신(新)바빌로니아 제국 나보니두스 왕이 선조들의 유물을 수집하며 시작됐다는 박물관.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렉산드리아에 설립한 '뮤즈들의 집(뮤제이움)'과 아탈리드 가문의 페르가몬 도서관 모두 오늘날 루브르박물관과 대영박물관과 같이 여러 문명의 책과 유물들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인류는 왜 박물관을 만든 것일까? 인간의 기억은 너무나도 불안전하고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기억하기 어려워하는 우리들. 죽고 나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우리가 완전히 사라지는 데 얼마나 걸릴까? 기억만으로는 아무것도 보존되지 않기에 우리는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려 하고,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레오폴트 폰 랑케가 "있었던 과거 그대로(wie es eigentlich gewesen)"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다.

아무도 없는 숲속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은 무의미하다. 누군가 들어야만 아름다운 음악이 되듯, 과거 역시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어야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수백, 수천 년 전의 과거를 진정으로 "있었던 그대로" 알 수 있을까? 물론 불가능하겠다. 그렇다면 이 세상 수많은 박물관의 진정한 의미는 "있었던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위해 지금 필요한 과거에 대한 만들어낸 기억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