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을 통해 본 북한 평양냉면의 변천사
분단 전엔 서울 식과 비슷··· 경제난·중국 영향으로 새콤달콤해져
평양냉면은 아리랑, 김장, 추석 등과 함께 북한 문화유산

평양 옥류관 냉면. 국수와 국물이 검정에 가까울 정도로 색이 짙다.

남북 정상회담 만찬에 평양 ‘옥류관’ 냉면이 나오면서 그렇잖아도 뜨겁던 대한민국의 평양냉면 붐은 기름을 부은듯 타올랐다. 옥류관 평양냉면은 이북 실향민들이 주로 운영하는 서울 평양냉면집과 달랐다. 메밀 함량이 높아 옅은 회색에 씹으면 뚝뚝 끊어지는 서울의 평양냉면 국수와 달리, 옥류관 냉면은 색이 짙다못해 검은색에 가까웠다. 옥류관 냉면을 맛본 이들은 면발이 좋게 말해 쫄깃하달 정도로 질기며, 국물도 새콤달콤하다고 평가했다.

평양냉면의 고향은 당연히 평양이다. 그렇다면 평양에 있는 옥류관 냉면이 정통의 맛일까. 서울의 평양냉면은 변질된걸까. 평양은 예전부터 이랬을까, 아니면 변화했을까. 오랜 분단으로 북한 평양냉면의 실체와 변천과정을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탈북자들의 증언도 제각각이라 누가 옳다 말하기 힘들다. 북한 평양냉면의 객관적 실체가 북한 노동당 공식 대변 매체인 ‘로동신문’에 기록돼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로동신문을 들여다봤다. 정답인지는 몰라도, 대강의 모습이 보였다.

◇평양냉면은 북한을 대표하는 ‘민족의 대표음식’···김일성의 냉면 사랑도 한몫

로동신문이 처음 발간된 1946년부터 올해까지 냉면 관련 기사를 검색해봈다. 로동신문은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서 검색 가능하다. 로동신문의 ‘랭면’ 기사는 49건, ‘평양랭면’ 기사는 40건이 나온다. 로동신문에 이처럼 많은 평양냉면 관련 기사가 나오는 건, 북한에서 냉면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닌 ‘민족의 대표 음식’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냉면이 ‘인민이 사랑하는 민족 음식’이 된 이유로 김일성을 빼놓을 수 없다. 김일성은 냉면을 무척 좋아했던 듯하다. ‘항일 혁명 투쟁 시기 위대한 수령님(김일성)께서는 대원들에게 조국이 해방되면 모두 함께 평양에 가서 시원한 랭면을 먹자고 자주 말씀하곤 하시었다.’(2011년 6월 16일자 로동신문)

옥류관도 김일성이 구상하고 완성했다. 2011년 2월 4일자 로동신문에는 옥류관 자리를 김일성이 정했다고 나온다. '(김일성이) 1958년 8월 반월도 앞에서 기슭에 솟아있는 바위벽을 오래도록 살펴본 후 저 바위가 옥류벽인데 집터로는 아주 좋은 자리라고 결정'했다고 한다.

◇분단 이전 평양냉면, 평양보다 서울에 더 가까운 맛

분단 이전 평양에서 먹던 냉면은 현재 옥류관 냉면과 같을까. 일제시대 냉면 관련 기록이 꽤 있다. 문재인 대통령 방북과 관련지을 일화도 있다. 1948년 평양을 방문한 김구 선생은 남북한대표자연석회에서 ‘특별호텔에서 냉면을 주문해 오겠다는데도 뿌리치고 ‘냉면은 삿자리에 앉아서 먹는 게 제격’이라면서 서문 밖 신양리 가는 쪽에 있는 유명한 평양냉면집에 들러 주인에게 사는 형편을 물어보고 ‘쟁반’을 시켜 먹기도 했다.’(선우진 ‘백범 선생과 함께한 나날들’)

서울 봉피양 평양냉면. 면은 메밀 함량이 높아 옅은 회색이고 국물은 투명하다.

당시 평양냉면 국수는 100% 메밀로만 뽑거나, 최소한 메밀 함량이 매우 높았다. 현재 평양 옥류관보다는 서울 유명 냉면집 냉면 면발에 더 가까웠다. 앞서 소개한 1926년 8월 21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서울서는 제아무리 잘 만드는 국수라도 밀가루를 섞습니다마는 이곳에서는 순전한 메밀로만 만든다’고 소개했다.

냉면 국물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 등으로 뽑은 육수였고, 겨울에는 주로 동치미 국물을 사용했다. ‘겨울에 평양냉면이라면 얼른 동치미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니 아랫목에 이불을 쓰고 앉아 덜덜 떨면서 동치미 국물에 냉면을 먹는 맛은 도저히 다른 데서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무슨 특별히 담그는 법이 있는 것은 아니오. 평양은 물이 좋고 웬일인지 다른 지방보다 무 맛이 다른 데다가 일기가 차가우니까 한 번 익은 맛이 변하지를 아니하므로 그 맛이 그대로 보존되어 씩씩한 맛을 잃지 않는 것뿐입니다.’(1935년 11월 14일자 동아일보)

◇분단 이후 북한 냉면 변화···경제난과 중국 영향으로 면발 질겨지고 국물 새콤달콤해져

감자 전분을 섞은 냉면이 있었지만 옥류관을 포함한 전통 평양냉면은 본래 메밀을 주 성분으로 했다. 1995년 9월 21일자 로동신문에 실린 '고유한 민족 음식 평양랭면'이란 기사에도 ‘평양 랭면은 순 메밀가루로 만들어야 제맛이 난다. 그것이 바로 평양 랭면의 특징’이라고 전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북한 평양냉면은 감자전분이 들어간 쫄깃한 스타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2008년 9월 4일자 로동신문에는 ‘소문난 식당인 평천 구역 종합 식당 봉남식당의 냉면은 매끈한 국수발로 인기를 끌고있다’고 전했다. 전분을 주 성분으로 만든 쫄깃하고 매끄러운 냉면이란 것이다.

이후 기사에서는 북한 평양냉면의 변화가 더욱 확연하다. ‘평양랭면은 메밀국수 오리와 여러가지 꾸미가 가지고 있는 맛이 함께 어울리면서 차고 시원하며 구수하고 질긴감이 나는 특색이 있다.’(2012년 7월 15일자 로동신문) 2014년 11월 30일자 로동신문은 ‘쫄깃하면서도 윤기나는 국수 사리는 메밀가루와 농마가루를 7:3이나 6:4의 비율로 배합한다’며 전분을 사용함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2015년 3월 29일자 로동신문 '천하 제일 진미 평양랭면' 기사에는 ‘평양랭면은 그 오리가 질기고 국물이 시원하고 달면서 상큼한 맛이 잘 어울리는 것’이라고 나온다. 면발에 이어 국물도 변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음식에 해박한 예종석 한양대 교수는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으로 불린 북한의 경제·식량난이 평양냉면 변화의 원인이라고 북한 관계자에게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인 입맛에 맞춰 쫄깃한 국수와 새콤달콤한 육수를 사용하는 중국 연변을 중심으로 한 조선족 냉면으로부터 영향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민족음식’으로서 평양냉면의 위치는 굳건해 보인다. 2015년 3월 22일자 로동신문은 ‘평양냉면이 아리랑, 김장, 태권도, 정월 대보름, 추석 등과 함께 북한 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고 전했다.

박정배는 한국, 중국, 일본 음식문화와 역사를 공부하고 글로 쓰고 있는 음식칼럼니스트다. 조선일보, 주간동아, 음식전문지 쿠켄 등에 오랫동안 음식 칼럼을 연재해왔다. ‘박정배의 음식강산’ 시리즈 3권 등 다양한 음식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