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왕진(往診) 가방을 들고 환자를 찾아가는 의사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최근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왕진에 대해 진료비를 더 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 개정안에 대해 여야 간 이견이 없기 때문에 20일 복지위 전체 회의, 10~11월 국회 본회의를 무리 없이 통과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은 환자나 보호자 요청으로 의사가 방문 진료(왕진)를 한 경우 요양급여 비용을 가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대로 왕진 모형을 개발하고 이에 따른 수가(酬價) 설계를 할 것"이라며 "늦어도 내년 5~6월쯤에는 시행이 가능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서울성모병원 의료진이 서울 관악구의 한 가정집에 찾아가 당뇨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이런 모습을 좀 더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6일 국회 보건복지위 소위에서 방문 진료 수가를 정한 건강보험법 개정안이 통과된 덕분이다.

현재 의사들에게 주는 진료비 체계는 의료기관 내에서 진료하는 것을 전제로 짜여 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불가능한 환자 요청으로 의사가 왕진을 가더라도 의료기관 내 진료비에다 교통비 정도만 환자에게서 받을 수 있어 사실상 왕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왕진에 나설 '인센티브'가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령화에 따라 병원 가기 어려운 환자가 증가하는데, 의사가 왕진을 갈 수 있게 수가를 조정해 재택 의료를 활성화하면 환자의 의료 접근성 향상은 물론 건보료 절감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인구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왕진 필요성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돼 있다. 치매 환자 등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급증하는 데다 핵가족화로 돌볼 가족도 없는 환자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도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 왕진 시스템을 구축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비용 2~3배로 책정할 듯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화를 겪고 있는 일본은 2000년대 중반부터 방문 진료를 활성화했다. 2007년엔 방문 진료 건수가 22만여 건이었으나 현재 의사가 환자 집으로 정기적으로 가는 방문 진료는 월평균 70만건이다. 환자들이 부정기적으로 의사를 부르는 왕진도 매달 14만건에 이른다. 한 해 1000만건의 진료가 병원 아닌 환자 집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일본처럼 방문 진료를 활성화하려면 의사들이 왕진에 나서도록 유도하고, 의료비 부담도 제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진료비와 환자 부담을 적절하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엔 이를 설정할 기본 자료가 전무한 실정이다. 복지부는 방문 진료에 드는 시간, 방문 진료에 따라 의사가 부담하는 기회비용, 환자의 방문 진료 비용 부담 능력 등에 대한 연구 용역을 조만간 발주할 예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연구 용역을 바탕으로 의사협회 등과 상의해야겠지만, 적어도 현재 의료기관에서 진료했을 때 주는 수가의 2~3배는 주어야 방문 진료가 활성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2016년 가정에서 지내길 원하는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해 의사까지 참여하는 '말기 암 가정 호스피스 시범사업'을 실시한 적이 있다. 환자 만족도는 높았지만 의사 초진료를 10만2310원(환자 부담 5120원)으로 책정하는 등 수가가 너무 낮아 활성화에 실패했다는 것이 학계의 평가다.

◇'커뮤니티 케어' 활성화에도 필요

일본의 방문 진료는 기본적으로 의사가 환자를 한 달에 두 번 방문하고 응급 상황일 때 연락이 오면 방문하는 방식이다. 24시간 연락이 가능하도록 주(主)의사와 부(副)의사 등 의사 2명이 환자 1명을 담당하고 있다. 의료기관에서 하는 진료의 두 배 정도 수가를 주고 별도의 관리비를 지급한다. 전체 의료 행위에 대해 한꺼번에 계산하는 일종의 '포괄수가제' 방식이지만 어려운 시술을 한 경우 별도의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이렇게 하더라도 환자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보다 의료비가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는 것이 일본 후생노동성의 통계다. 환자의 한 달 평균 입원 비용은 약 487만원인데 방문 진료·간호·돌봄 비용은 166만원 정도라는 것이다.

앞으로 확대해야 하는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돌봄)를 위해서라도 방문 의료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복지부는 커뮤니티 케어 추진 계획에 재택 의료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포함시켰다. 일본 보건의료 전문가인 남상요 유한대 교수는 "환자 입장에서는 자기가 살던 곳에서 케어 받는 것이 가장 좋기 때문에 비용 문제를 떠나 삶의 가치 측면에서 방문 진료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요양병원 입원 환자는 2014년 약 53만1000명에서 2016년 약 62만2000명으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을 포함해 15만~20만명이 여건이 허락하면 재택 의료를 이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대 의대 윤영호 교수는 "적절한 설계와 수가 책정이 왕진 활성화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며 "30분 이내에 환자에게 접근 가능한 선에서 15분 진료 보장과 의사 이동 시간의 기회비용을 감안해 적정 수가와 진료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