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와 소설가의 공통점이 있을까. 폴 맥어웬(55) 미국 코넬대 물리학과 교수는 "몇 번을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가 쓴 SF 소설 '소용돌이에 다가가지 말 것'(허블)이 이달초 국내 출간됐다. 맥어웬 교수는 본지 이메일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실험이 설계한 대로 이뤄지지 않듯 소설도 마찬가지였다"면서 "첫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열네 버전을 써야 했다"고 말했다.

그가 선택한 소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생체 실험으로 악명 높았던 일본 '731부대'다. 소설은 1946년 세균전 전문가로 참전한 리암 코너 코넬대 교수가 731부대가 개발한 세균 병기(兵器) '우즈마키(일본어로 '소용돌이'란 뜻)'를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맥어웬 교수는 "수많은 미국인이 731부대의 잔혹 행위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면서 "소설을 통해 이 슬픈 시기의 역사를 비추고 싶었다"고 했다.

소설 속 인물처럼 노벨상을 받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폴 맥어웬 교수는“나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연구원은 노벨상에 굉장히 가까워진 것 같다”고 했다.

맥어웬 교수는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 유력 후보에 꼽힌 권위 있는 연구자.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낯선 과학 용어에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쯤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고 빠른 속도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 초반, 리암 코너는 코넬대 캠퍼스 다리에서 투신해 시체로 발견된다. 리암의 동료 교수와 손녀가 그의 수상한 죽음과 세균 병기 '우즈마키'에 얽힌 미스터리를 파헤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스릴러 속에서 모든 분야의 지식을 유감없이 드러낸다"고, 타임지는 "과학기술과 의약 지식, 대량 학살이 뒤섞인, 손에서 놓기 힘든 추격극"이라고 평했다.

완성까지 8년이 걸렸다. 그만큼 취재에 심혈을 기울였다. 코넬대 균류학 교수부터 미국 세균전 연구소인 포트 디트릭 연구원까지 인터뷰했다. 코넬 경찰서장도 만났다. 경찰서장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진 중 한 사람이 캠퍼스 다리에서 뛰어내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는 그의 질문에 친절히 답변해줬다. "정말 놀라운 일이죠. 책을 쓴다고 말하면 누구든 당신에게 이야기를 해줘요. 폐쇄된 육군 무기고에서는 친절하게 투어까지 해주더라니까요."

책이 미국에서 출간되고 그는 코넬대 학생들과 '작가와의 대화'를 열었다. '과학자가 어떻게 소설을 쓰게 됐냐'는 질문에 그는 "수십 가지 답변이 있다"고 했다. 그중 한 답변. "코넬대는 엄청난 괴짜(nerd)들을 배출해낸 곳이거든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도 '롤리타'를 썼고, 커트 보니것, 칼 세이건도 여기서 글을 썼죠." 메일로 똑같은 질문을 하자 좀 더 현실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중년의 위기! "과학자로선 잘나갔지만, 좋아하는 글을 쓸 시간도, 소설 읽을 시간도 없었어요. 안식 휴가를 내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죠."

암살자로 등장하는 중국계 여성이 아시아 출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보여준다는 비판도 있다. 욕심 많고 목표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것으로 묘사된다. 맥어웬은 "정당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소설에서는 좀 더 3차원적인 악역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그는 10억분의 1의 세계를 다루는 나노 과학 분야 전문가다. 연구실 슬로건도 "작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소설에도 자신의 연구 주제를 가져왔다. 자살한 리암 코너의 배 속에선 겨자씨만 한 초소형 로봇 '마이크로 크롤러' 네 마리가 발견된다. "모든 기술에는 명과 암이 있잖아요. 제 연구도 전쟁이나 무기 개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죠." 그는 "지금 우리 연구실에서는 소설 속에 나오는 '마이크로 크롤러'와 닮은 작은 로봇들을 개발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