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손진석 특파원

독일 최대 건설회사인 호흐티에프는 지난 1월, 올해 매출이 작년보다 4%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4월이 되자 이 회사는 연 매출이 6% 늘어날 것으로 전망치를 끌어올렸다. 올해 독일 경제가 기대 이상의 순풍을 타자 실적 개선 폭이 커질 것으로 본 것이다. 실제 호흐티에프의 2분기 순이익은 1억3100만유로(약 1690억원)로 1분기보다 30% 늘어났다. 이 회사는 하반기에 실적이 더 상승세를 보여 연간 순이익이 5억유로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호흐티에프뿐이 아니다. ZDB(독일건설업중앙회)는 올해 독일 건설업계 매출 증가율이 4%에 달해, 동·서독 통일 이후 한창 건설 붐이 일어나던 1995년 이후 가장 높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건설업은 유럽에서 '나 홀로 질주'를 거듭하는 독일 경제의 호황을 보여주는 대표 업종이다. 독일은 천문학적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수출 상승세와 완전 고용에 가까운 낮은 실업률을 양 날개로 삼아 가계소득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에 진입했다. 건설 경기 붐까지 얹어지며 가히 파죽지세다.

유럽서 홀로 질주하는 독일, EU 성장세 이끌어

독일은 경제 규모(약 4720조원)가 유럽 1위, 세계 4위다. 덩치뿐 아니라 요즘엔 성장 속도에서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올해 독일 성장률이 2.2%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프랑스(1.8%), 영국(1.4%), 이탈리아(1.2%) 등 유럽 경쟁국들보다 훨씬 높다.

그렇다 보니 '유럽의 맏형'답게 EU(유럽연합) 전체 성장률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달 24일 독일 연방통계청은 올해 2분기에 독일이 0.5%(전분기 대비)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당초 전망치(0.4%)를 상회했다. 독일의 호황은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의 2분기 성장률이 전망치(0.3%)보다 높은 0.4%를 기록한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무엇보다 수출 실적이 눈부시다. 독일 싱크탱크인 이포(IFO)경제연구소는 올해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가 2990억달러(약 335조원)에 달해 3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GDP의 7.8%에 달한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4200억달러(약 47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견되는 것과 비교하면 무역에서는 독일이 단연 세계 최강이다. 고용 시장도 활황세다. 올해 7월 독일 실업률은 3.4%다. 사실상 완전 고용이다. 같은 달 9.2%였던 이웃 프랑스와 단적으로 대비된다.

수출·고용 호황에 건설 붐이 뒷받침

독일 경제의 질주는 수출 호조→기업 실적 증가→내수 활성화로 이어지는 수출 주도형 경제의 '모범 공식'이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올해 상반기에 1215억유로(약 157조원)의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독일 경제력에 비해선 저평가된 화폐인 유로화를 쓰면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데다, 대기업·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기술기업들의 제품이 해외에서 환영받기 때문이다. 포커 트라이어 독일상공회의소 대외경제국장은 "수출로 얻은 이익을 국내외에 재투자해서 더 많은 이익을 얻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수출로 목돈을 벌어들이는 가운데 커다란 내수시장까지 받치고 있어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업률이 낮은데도 임금이 비교적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호황의 발판이 되고 있다. 통일의 충격으로 실업자가 크게 늘어나던 1990년대 중반부터 독일에서는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고용을 유지하는 사회적 합의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독일 정부에 따르면, 1991~2015년 독일의 단위노동비용은 30% 증가에 그쳐 같은 기간 55% 증가한 유로존, 75% 늘어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보다 증가세가 훨씬 낮다. 경제 규모에 비해 저렴한 인건비를 유지해 기업들이 수익을 많이 남기고, 그에 따른 고용 창출 효과가 뚜렷하다. 2005년 11.2%였던 독일 실업률은 꾸준히 낮아져 작년부터 3%대를 기록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통일 직후 경기 침체로 실업자가 양산되던 1990년대 초의 아픔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직장을 잃는 사람을 최소화하려는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작년부터는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돈이 국내 건설업에 투자되면서 경기가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이포경제연구소는 작년 독일의 건축 산업 성장률이 2011년 이후 최고치인 2.5%였는데, 올해는 그보다 높은 2.6%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경제 매체 CNBC는 "독일이 무역 흑자와 저금리로 유동성이 풍부한 데다 이민자 유입에 따른 인구 증가로 건설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주에 대한 견제가 발목 잡을 수도

독일이 독주하면서 이에 대한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 IMF는 독일의 지나친 경상수지 흑자가 '경제적 균형'을 깨뜨려 갈등을 부른다고 지적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독일의 막대한 흑자를 무역 전쟁을 일으키는 명분으로 삼고 있다. 혼자 앞서 달리는 독일에 대한 유럽 내 다른 국가의 불만도 점증하고 있다. 독일은 올해 재정 수지가 GDP 대비 0.2% 흑자를 낼 전망이지만, 프랑스와 영국은 ―2.2%, 이탈리아는 ―0.8%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유럽 내 불균형과 미국의 견제가 독일 경제에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프랑스·네덜란드·포르투갈 등 주요 교역 상대의 성장세가 뒤처지면서 독일 수출이 증가할 여지가 감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이탈리아의 포퓰리즘 연정(聯政)이 막대한 공공부채에도 정부 지출을 늘리고 있어 독일을 비롯한 유럽 금융시장의 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독일 1위 은행인 도이체방크와 2위 코메르츠방크가 투자 실패 등으로 나란히 경영난에 빠져 있는 것도 아킬레스건이다.

IMF는 독일 정부가 유럽 경제 활성화를 위해 더 많은 재정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독일이 내수를 지금보다 더 부양해야 이웃 나라들도 독일 수출을 늘려 숨통을 틔울 수 있으니 '큰 형님'답게 씀씀이를 늘리라는 논리다. 베를린 소재 헤르티행정대학원의 안케 하셀 교수는 FT 기고를 통해 "이제는 독일 정부가 공공 부문 투자를 늘리고 근로자 임금 인상을 유도해야 수출에 쏠린 독일 경제가 균형을 갖추게 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독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