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규 사회부 차장

김명수 대법원장을 조금 아는 사람들은 "겸손하고 좋은 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를 잘 아는 이들은 "그렇긴 한데…"라면서 조금 다른 얘기를 한다. "뭔가 맺히고 꼬인 게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법원장에 오르기 전 춘천지법원장까지 지냈지만 이른바 사법의 '주류(主流)'는 아니었다.

'잘나가는' 판사들이 가던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에 근무한 적이 없다. 그런 불만과 반감이 가슴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간혹 술에 취해 후배 판사들에게 "너는 누구 편이냐"고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누구보다 공정해야 할 대법원장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는 건 심각한 일이다.

그는 대법원장이 된 후 자신이 회장을 지냈던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들을 중용하고 있다. 대법관, 헌법재판관은 물론 법원행정처 요직까지 거의 이 모임 출신들로 채우고 있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편을 가르는 대법원장 인식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은 대법관 13명 전원에 대한 임명 제청권,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에 대한 지명권을 갖고 있다. 판사 3000명에 대한 인사를 통해 사법부 판결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도 갖고 있다. 그런 권한을 이용해 편 가르기 인사를 계속할 때 앞으로 판사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는 뻔하다. 줄을 잘 서거나 특정 성향 판결을 하는 게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어쩌면 편 가르기 인사보다 이게 더 큰 문제다. 어느 국민이 재판이 공정하다고 믿겠는가.

최근의 인사(人事)는 그런 우려를 더 짙게 만든다. 지난달 21일 김 대법원장이 신임 헌법재판관 후보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출신인 이석태 변호사를 지명하고, 여드레 후 여당이 김기영 서울동부지법 수석부장판사를 헌법재판관 후보로 지명한 것이다.

이 변호사는 김 대법원장과는 잘 모르는 사이고,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이 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했을 때 그의 상관인 민정수석이 문 대통령이었다. 김 부장판사는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 출신으로 김 대법원장 최측근이지만 여당 사람들과는 인연이 없다. 정권과 대법원장이 자기 사람 챙기려고 한통속이 돼 '인사 거래'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원하는 이 변호사를, 청와대 의중을 살핀 여당은 대법원장이 원하는 김 부장판사를 지명하는 거래를 통해 '측근 심기' 논란을 피해 가려 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관은 대통령·국회·대법원장이 3명씩 지명하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다. 여기엔 서로 견제하라는 권력분립의 이상이 담겨 있다. '인사 거래'를 했다면 정권과 대법원장이 야합해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다. 역대 정권에서도 코드 인사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분명 도를 넘었다.

머리 좋은 판사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문제 제기하는 이가 한 명도 없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는 대법원장 인사권을 제한해야 한다며 세미나까지 열더니 김 대법원장의 노골적인 코드 인사에는 함구하고 있다. 자기들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어제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사법 개혁을 주문했다. 김 대법원장도 전임 양승태 사법부에 대한 검찰 수사에 "더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다. 마치 정권과 한 몸이 된 듯하다. 정권과 대법원장, 일부 판사가 이렇게 한통속이 되는 건 사법부의 심각한 위기이고, 국민에겐 불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