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노딜 브렉시트’를 내부적으로 검토한 대외비 문서가 최근 언론 카메라에 찍히면서 영국과 유럽 정계가 요동치고 있다. 지난 7일 정부 고위 관계자가 손에 들고 있던 문서가 카메라에 찍혔던 게 화근이었다.

당시 해당 문서는 ‘작전명 옐로해머: 노딜 브렉시트 비상계획(Operation Yellowhammer: No-deal contingency planning)’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영국 현지 언론들은 영국 정부가 ‘노딜 브렉시트’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옐로해머는 최근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조류의 일종이다. 당시 이 문서에는 "(EU와의) 합의없이 이탈한 경우에는 신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의사소통 수단을 구축해야 하며, 특히 금융업(이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적혀있다.

언론 카메라에 찍힌 노딜 브렉시트 검토 문서를 들고 있는 모습

◇ 궁지에 몰린 메이 총리, EU 입장 누그러뜨리나

이처럼 영국 정부 안팎에서 브렉시트가 아무런 협상 없이 개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유럽연합(EU) 측도 영국에 조심스럽게 한발 다가갈 준비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메이 총리는 EU 회원국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는 면제받고 경제적으로는 EU 회원국과 통상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소프트 브렉시트’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EU는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을 모두 포기하고 탈퇴하는 ‘하드 브렉시트’ 입장을 고수 중이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그러나 양측의 협상이 진척되지 않고 소프트 브렉시트도 하드 브렉시트도 아닌 노딜 브렉시트의 가능성이 커지면서 EU 측도 기존 입장을 다소 완화하는 쪽으로 논의를 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슨 전 외교장관이 지난 주말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협상 전략을 ‘헌법에 자살폭탄 조끼를 입혀놓고 기폭장치를 EU에 넘겨준 것과 같다’고 맹비난한 상황에서 메이 총리로서는 EU로부터 긍정적인 신호가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은 오는 20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비공식 회의를 열고 아일랜드 국경문제와 같은 기존의 핵심 사안 외에 특히 메이 총리의 입지를 지원하기 위해 미셀 바르니에 EU 협상 수석대표에 추가 지시를 내릴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메이 총리는 당내로부터도 거센 압박을 받고 있어 브렉시트 협상이 타결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런 와중에 ‘하드 브렉시트’ 주장하는 영국 보수당 내 강경파 의원 50여명은 11일 밤(현지 시각)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를 낙마시키는 방안을 공개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져 내부 갈등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를 두고 "메이 총리가 수일 내 강경파의 쿠데타에 직면할 수 있다"고도 해석했다.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 협상을 매듭지으려면 강경한 태도의 EU뿐 아니라 당내 강경파도 달래야 하는 난관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 산업·금융계 수만개 일자리 잃을 수 있다고 경고

브렉시트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데 따른 후유증을 우려하는 산업계의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영국 최대 자동차업체인 재규어랜드로버(JLR) 랄프 스페스 최고경영자(CEO)가 적절한 브렉시트(Brexit) 협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수만 개의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내년 3월 영국이 EU를 떠나게 되면 재규어랜드로버가 영국 내에서 제대로 공장을 운영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면서 "특히 잉글랜드 남부 도버 항구에서 부품을 실은 차량이 통관을 위해 대기해야 한다면 자동차를 제때, 예산에 맞춰 생산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또 "적절한 브렉시트 협상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수만 개의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면서 "단 한 개의 부품만 없어도 자동차 전체 생산 과정이 멈추게 되는데 이 경우 하루 손실액만 6천만파운드(한화 약 879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런던은 최근 브렉시트로 인한 불확실성으로 국제금융센터로서의 지위를 점차 잃고 있다. 영국계 컨설팅그룹 지/옌(Z/YEN)이 최근 집계한 국제금융센터 지수에선 뉴욕이 788점을 얻어 런던(786점)을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런던은 지난 3월 조사에서는 1위였으나 이번 조사에서 8점 정도 하락하면서 뉴욕에 추월을 허용했다. 이어 홍콩이 783점으로 3위, 싱가포르가 4위에 올랐다.

금융 중심지 위상이 축소됨에 따라 자산 3000만달러 이상의 ‘수퍼리치’ 숫자도 파리와 역전됐다. 2016년 런던의 수퍼리치 수는 3630명에서 지난해 3830명으로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파리는 3440명에서 3950명으로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