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서초구 주부 박모(37)씨는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서울시가 주관하는 농업 체험 행사에 참여했다가 깜짝 놀랐다. 정원 50명 예약이 순식간에 마감된 인기 강좌였으나 빈자리가 16석이나 됐다. 대기 인원이 40명인 행사였다. 알고 보니 예약자들이 예약 취소를 하지 않고 예약 부도(노쇼·No Show)를 낸 것이었다. 박씨는 "주변에도 대기를 걸어놓은 엄마가 많았다"며 "예약 취소를 안 하고 나타나지도 않으면 다른 시민의 참가 기회를 뺏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울시와 자치구 25곳이 운영하는 다양한 무료 체험·탐방 프로그램이 노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참가비가 없다 보니 예약을 걸어두고 사전 통보 없이 불참하는 경우가 많다. 노쇼로 세금이 낭비되고 참가를 원하는 시민의 기회가 박탈된다는 지적이다.

11일 현재 서울시 공공 서비스 예약 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예약할 수 있는 문화 체험은 1만4000건이 넘는다. 기관 자체적으로 예약을 받는 곳도 많다. 본지가 시와 구에서 운영하는 인기 체험·강좌 프로그램 10개를 선별해 예약률 대비 참가 인원 비율을 조사한 결과 평균 노쇼 비율이 30%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중구 한양 도성에서 열리는 '금요 야간 영화제' 예약률은 매번 100%에 육박한다. 그러나 예약자 5명 중 평균 1명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영화제를 운영하는 중구 관계자는 "정원 80석 중 절반밖에 차지 않을 때도 있다"며 "영화 상영 당일 노쇼가 생기면 직원들이 현장 접수를 하느라 숨 돌릴 틈이 없다"고 했다. 중구에 따르면 행사를 한 번 진행하는 데 예산 670여만원이 들어간다. 행사 1회당 노쇼 비율이 절반이면 세금 335만원이 시민을 위해 쓰이지 못하고 날아가는 셈이다.

서울 송파구 한성백제박물관의 박물관 체험 프로그램인 '열린 박물관'은 매회 초등학생 자녀를 동반한 가족 8~12팀을 받는다. 예약 부도가 회당 평균 3~4팀 발생한다. 전날이나 당일이 돼서야 취소하는 팀도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무료이다 보니 '일단 예약하고 보자'는 시민이 많은 것 같다"며 "노쇼가 생기면 급하게 추가 예약을 받거나 현장에서 신청을 받아 공석을 메운다"고 말했다. 박물관 측은 "노쇼를 막기 위해 매주 3~4번씩 예약자들에게 '취소하려면 미리 알려달라'는 문자를 발송하지만 노쇼가 줄지 않아 곤혹스럽다"고 했다.

저학년 어린이 해설 서비스를 운영하는 서울역사박물관의 평균 노쇼율은 20%대다. 박물관 관계자는 "많을 때는 정원 30명 중 15명이 안 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과 6월 총 네 차례에 걸쳐 역사 콘서트를 진행한 운현궁도 노쇼로 인해 정원 50명을 채우지 못했다. 공연 4회에 노쇼율은 20~40%에 달했다. 회사원 권순재(28)씨는 "'나만 손해를 안 보면 괜찮다'는 생각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시민의식 부재를 공공 서비스 노쇼의 주원인으로 꼽는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약을 사회적 약속이 아닌 '미리 맡아두는 자리'로 여기는 시민이 여전히 많다"며 "우리 사회에 아직도 예약 문화가 온전히 정착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예약 부도를 낸 시민에게 불이익이 가는 장치가 사실상 없다 보니 노쇼가 근절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의식에만 기대지 말고 실질적으로 노쇼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설계가 필요하다"며 "예약자들에게 번호를 부여하거나 개인 정보를 받아 예약을 어길 경우 다른 예약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페널티를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작구에 있는 보라매안전체험관에서 운영하는 재난 체험은 최근 지진과 태풍 등으로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러나 노쇼를 할 경우 6개월간 인터넷 예약을 제한하고 있어 노쇼율이 10% 이하로 낮은 편이다. 서울시청 홀 대관도 별도의 비용을 받고 있어 노쇼 사례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