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표범·얼룩말에 뱀피까지…. 이번 가을·겨울 시즌 각종 패션쇼 무대를 장식한 대표적 패턴은 바로 동물무늬다. 위아래 반짝이는 네온 컬러의 호피 슈트를 선보인 톰 포드와 걸어오는 모양부터 한 마리의 호랑이 같은 프로엔자 스쿨러, 얼룩말이 뛰어다니는 것 같았던 자딕 앤 볼테르, 표범 한 마리가 인조 털 코트로 둔갑한 듯한 빅토리아 베컴 등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빼놓지 않고 쇼 무대를 야생의 초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동물무늬는 1947년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실제 털이 아닌 동물무늬 프린트 의상을 처음 쇼 무대에 선보인 뒤 섹시함의 상징이 됐다. 가끔 런웨이에 등장하긴 했지만 올해처럼 줄줄이 등장한 것도 드문 일이다.

마이클 코어스가 올해 가을·겨울 시즌에 선보인 체크와 표범 무늬 의상과 가방. 이처럼 강렬한 동물무늬나 원색 체크가 이번 가을·겨울 각종 패션쇼 무대에 줄줄이 등장했다.

강렬한 무늬는 호피만이 아니다. 오래된 테이블보처럼 지루하게 보였던 체크도 이번 시즌엔 변화무쌍하다. 스코틀랜드의 전통적 격자무늬인 타탄 체크, 창살 같이 다소 넓은 격자의 윈도페인(windowpane), 인도산 고운 무명 직물로 만든 마드라스 체크, 두 가지 색이 번갈아 교차하는 테터솔 체크 등 모든 체크무늬들이 패션쇼에 등장했다. 최근 이탈리아의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지분을 인수해 화제가 된 미국 브랜드 톰 브라운부터 겐조, 사카이, 베르사체, 준지 등 뉴욕·런던·파리 무대까지 노랑·빨강·보라색 원색 체크가 등장했다.

야생동물 무늬만으로도 강한 느낌을 주는데 올 시즌은 원색 체크까지 등장하며 더 강하고 센 이미지가 패션계 화두가 된 느낌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의 기본 원칙인 ▲세 가지 색 동시에 입지 않기 ▲톤이 비슷한 남색과 블랙·화이트와 크림색 함께 입지 않기 ▲핸드백과 신발의 컬러나 패턴 맞추기 같은 것들이 최근 들어 모두 파괴되고 있다"며 "색과 색의 충돌, 패턴과 패턴이 정신없이 교차하는 마구잡이식 옷 입기가 가장 최근의 패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고 했다. 여기에 동물무늬와 체크가 올 시즌 핵심 무늬로 떠오르면서 가디언지는 '부조화의 조화(matchy-mismatchy)'라고 설명했다.

라 실루엣 드 유제니의 표범 무늬 치마(왼쪽)와 마이클 코어스의 원색 체크 상·하의. 자칫 잘못 매치해 입으면 촌스러워 보이기 쉽다.

형식과 격식을 파괴한 스타일에 평범함을 거부하는 동물무늬와 체크까지 더해지면서 따라서 입어보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정글에서 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과도한 패턴 의상은 옷장 구석으로 들어갈 것"이라며 "신발·벨트·지갑 같은 액세서리부터 포인트를 주거나 위나 아래 중 하나는 단색 컬러로 균형을 맞춰주는 게 좋다"고 했다. 적극적이면서도 천박하지 않고 세련되게 연출하려면 색상 선택에 주의해야 한다. 박만현 피알라인 대표는 "이번 시즌 마이클 코어스가 선보인 의상이나 가방을 보면 체크와 호피를 균형감 있게 결합한 것이 단연 돋보인다"면서도 "너무 튀는 게 싫다면 다소 무거운 느낌의 블루나 네이비 색조의 호피나 체크 의상을 선택하든가 안감이나 깃에 호피가 포인트로 곁들여진 트렌치코트나 재킷을 걸치면 한층 격조 있는 패션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