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도동 상도유치원 건물 일부가 6일 붕괴했는데도 인명 피해가 나지 않은 것은 사람이 없던 한밤(오후 11시 22분)에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하늘이 살린 것"이라고 했다. 사고가 한나절만 빠르거나 늦었어도 대규모 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상도유치원을 떠받치고 있던 땅이 꺼지자 'ㄷ' 자(字) 모양의 유치원 왼쪽 건물은 엿가락처럼 뒤틀렸다. 지붕이 무너져 내렸고 건물이 앞쪽으로 10도 기울어졌다. 서울 동작구청 등에 따르면 사고가 난 왼쪽 건물의 면적은 전체 건물(2247㎡·680평) 중 20%인 450㎡(약 136평) 정도다. 사고 건물 1층엔 4세반 교실 2개, 2층엔 5세반 교실 2개와 6세반 교실 1개가 있었다. 총 99명의 아이들이 이 5개 교실을 이용하고 있다. 건물 3층에는 강당, 지하 1층엔 보일러실이 들어서 있었다.

사고 발생 14시간 전인 이날 오전 9시. 이 유치원 정원 122명 중 117명이 등원했다. 아이들은 간식을 먹은 뒤 10시 50분부터 그룹별로 동화 읽기, 악기 연주, 노래, 신체 표현 수업 등을 받았다. 사고 발생 지점인 3층 강당 '자람터'에서도 수업이 이뤄졌다. 11시 5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점심을 먹었다. 오후 1시부터 양치를 하고 놀이터에서 모래 놀이, 역할 놀이를 했다. 오후 1시 30분 59명의 아이들이 귀가했다. 나머지 58명은 유치원에 남아 방과 후 수업을 받았다. 유치원 관계자는 "오후 8시까지 수업이 있었다"고 했다. 이로부터 3시간쯤 후 붕괴 사고가 났다.

전문가들은 이날 일과 시간 중에 사고가 났다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김찬오 교수는 "주변 주민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사고 직후 건물 외벽이 뒤틀리며 큰 소리가 났다는데 이는 건물이 급격히 기울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4~6세 아이들에겐 대규모 산사태가 덮친 듯한 충격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보통 지진은 좌우로 흔들리는데 산사태는 좌우, 위아래로 흔들린다. 그는 "외부 충격에 취약한 아이들은 이런 복합적인 흔들림을 견딜 수 없다. 중심을 잃고 넘어져 크게 다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벽에 세워둔 책장이나 장난감, 조명 기구들이 떨어질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김 교수는 "넘어진 아이들 위로 집기들이 쏟아졌다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 발생했을 것"이라며 "천둥 치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는데 그 상황에선 성인들도 공황 상태에 빠져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다"고 했다.

연세대 조원철 명예교수는 "아이들이 그런 충격과 함께 넘어지면 방향 감각을 상실하면서 패닉 상태에 빠지기 쉽다"며 "선생님들이 곁에 있었다고 해도 아이들이 탈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조 명예교수는 "외부 콘크리트가 깨질 정도의 힘이 순간적으로 작용하면 몸무게가 가벼운 아이들은 건물 밖으로 튕겨나갈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 사고 현장을 찍은 사진을 보면 유치원 내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놀이 기구 일부가 10m 아래 공사 현장까지 굴러 떨어졌다.

가스 누출이나 전기 합선으로 인한 2차 피해 가능성도 높았다. 사고 직후 건물을 찍은 영상을 보면 불꽃이 튀면서 건물 내부 전등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한다. 건물이 기울어지면서 전깃줄이 당겨져 스파크가 발생한 것이다. 또 인근 주민들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스 냄새가 진동했다고 했다. 소방 당국은 건물이 뒤틀리면서 가스 파이프에서 가스가 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성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 교수는 "유출된 가스에 전기 불꽃이 옮아 붙으면 대형 화재가 일어날 수 있다"며 "화재까지 충분히 갈 수 있었던 사고"라고 했다.